이향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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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의미와 상징성
-한국 현대시를 중심으로-
자연은 예로부터 문학의 중요한 소재로 채용되어 왔으며, 자연 중에서도 특히 많이 언급되어 온 것 중 하나는 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문학이라 해도 각 장르의 특성에 따라 소재를 선택함에 있어서 제한을 받을 수가 있다. 예컨대 소설에서는 소재로 선택된 어느 특정한 사물만으로 완전한 작품이 완성될 수 없다. 소설은 플롯과 테마와 캐릭터 및 배경을 주요 요소로 하여, 인생을 탐구하고 인간성을 창조하는 특성을 가진 문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 혹은 수필은 소설과 달리 사물에서 받은 정서적 충격(감동)을 표현하는 문학이기 때문에 꽃을 제재로 한 작품들이 많다. 우리말 사전에서 '꽃'이라는 항목을 찾아보면 '식물의 생식기관'임을 강조하여 설명해 놓았다. 이희승 편「국어대사전」(민중서관)의 기록은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꽃 : 명사 ① <식> 현화식물의 유성 생식 기관. 형상과 색채가 다종다양하여 각각 그 특징을 나타냄. 구조상 긴요 기관인 꽃술과 보조기관인 화피(花被)의 두 부분으로 되었음. 꽃술은 수술과 암술이 있는데 둘 다 가진 것을 양성화, 그 중 하나만 가진 것을 단성화라 함. 화피는 내부를 보호하고 또 벌레를 꾀는 것으로 ,꽃받침과 꽃부리로 구분함. 대개 화밀(花蜜). 방향이 있음. 수분에 따라 풍매화, 충매화 등이 있음. 가과(佳果).
그러나 이러한 꽃의 정의는 다시 그 밑줄에 다음과 같은 내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② 꽃이 핀 나뭇가지. ③ 아름다운 계집. 미인. ④ 아름답고 화려한 일. ⑤ 번영하고 영화스러운 일. ⑥ 평판이 좋고 인기 있는 일.
우리는 문학이 무엇인지, 시가 무엇인지 그 개념조차 파악하지 못한 유년시절에도 곧잘 여성을 꽃(식물)에 남성을 새(동물)에 비유하곤 했었다. 이는 칼 융이 지적한 아니마(Anima)와 아니무스(Anmus)의 심리적 내지 정신분석적 차원에서 해명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결국 꽃이 지니고 있는 이미지에서 연유한 것이다. 이것은 위의 ④, ⑤, ⑥의 설명과 일치하는데 이들은 모두 꽃의 외양에서 발전한 2차적인 의미인 것이다. 필자는 시에 나타난 꽃의 이미지를 원형으로서의 꽃, 문학적 배경으로서의 꽃, 그리고 자연적이며 개별적인 사물로서의 꽃으로 3분하여 고찰해 보려고 한다. 1. 원형으로서의 꽃
시에서 원형으로서의 꽃을 표현했다함은 꽃이 가지고 있는 개별적이고 특수적인 성격을 간과하는 대신 일반적이며 보편적인 꽃의 성격을 강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장미면 장미로서, 백합이며 백합으로서의 특성이 있으며 이미지와 상징이 다르다. 장미도 아니고 백합도 아니요, 난초도 국화도 아닌 '꽃', 모든 꽃들을 한데 뭉뚱그려 지칭하는 '꽃' 그것은 새와 짐승 나무와 풀과 구별될 뿐, 다른 어떤 꽃과도 구별하지 않는 그냥 '꽃'인 것이다. 원형으로서의 꽃은 원형으로서의 새, 나무, 짐승, 바람 등의 이미지와 구별된다. 원형으로서의 새가 비상의 자유를 의미하고 짐승이 원시와 야생을 의미한다면, 해의 원형적 이미지는 광명, 산은 고난, 역경 혹은 항구불변하는 믿음을 의미한다. 이에 대하여 원형으로서의 꽃은 아름다움과 사랑을 암시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 사는 작은 새요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꽃이 지네 - 김소월 <산유화> 전문
위의 시에서 산과 꽃과 새는 모두 원형적 산이요 원형적 새요 원형적 꽃이다. 남산이나 금강산이나 백두산이라는 특정한 산이 아니라, 그냥 산이며 비둘기나 뻐꾸기나 꾀꼬리가 아닌 그저 새인 것이다. 산에 피는 꽃은 산나리꽃도 있고 원추리꽃도 있을 것이며 진달래도 있을 것이지만 위의 시는 개별적인 꽃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꽃이라는 것이다. 산유화는 이미지가 없는 시라는 지적을 받기도 하는데 그것은 개별적인 꽃이나 산, 새의 이미지를 두고 하는 말이지, 원형적인 이미지까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대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김춘수 <꽃> 전문
위의 시에서 꽃은 무엇인가? 그것은 가장 가치 있는 존재로서의 꽃이며 열정을 바쳐 추구하는 이념으로서의 꽃을 의미할 것이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존재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것이고, 존재에 타당한 가치를 인정받았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앞에서 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위의 시는 암시해 주고 있다. '꽃'이 된다는 것은 완성이 된다는 것이며 영원의 존재로 기록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꽃은 최고의 이상, 꿈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꽃을 바치고 축하하는 마음을 꽃으로 표현하며 이별의 마음을 꽃으로 대변한다. 꽃이라는 것은 절정의 생명이요. 집약된 가치요, 추구해야 하는 이념인 것이다.
2. 문학적 배경으로서의 꽃
시인은 타고난 성격에 따라서 일정한 종류의 꽃을 시작 상에 자주 운용할 수가 있다. 그러나 꽃은 제 각각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시인이 시에서 특정한 꽃을 언급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언급으로 머물지 않고 전체 시의 성격에까지도 영향을 준다. 우리가 꽃의 외모와 이름만 듣고도 곧잘 전통성과 외래성을 구별하고 문명의 도시 혹은 평화로운 농촌 등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은 꽃이 가지고 있는 얼굴, 다시 말해서 이미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히야신스나 칸나, 아네모네, 데이지, 베고니아, 장미 등의 꽃 이름에서 우리는 이국적인 문화를 느끼는 대신 호박꽃이나 할미꽃, 목화꽃이나 삐비꽃을 통해서 한국적인 문화와 전통을 느낄 수가 있게 된다. 또 전자를 통해서 외국 여인의 발랄함과 세련됨을 느낄 수 있다면 후자에서는 우리 시골 마을의 처녀와 같은 질박함과 순수를 느낄 수가 있다.
카네이션이 흩어진 석벽 안에선 개를 부르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동리는 발 밑에 누워 먼지 낀 삽화같이 고독한 얼굴을 하고 노대가 바라다 보이는 양관의 지붕 위엔 가벼운 바람이 기폭처럼 나부낀다. 한낮이 겨운 하늘에서 성당의 낮종이 굴러 내리자 붉은 노트를 긴 소녀 서넛이 새파란 꽃다발을 떨어뜨리며 햇빛이 퍼붓는 돈대 밑으로 사라지고
어디서 날아온 피아노의 졸린 여운이 고요한 물방울이 되어 푸른 하늘에 스러진다.
우유 차의 방울 소리가 하얀 오후를 싣고 언덕 넘어 사라진 뒤에 수풀 저쪽 코트 쪽에서 샴페인이 터지는 소리가 서너 번 들려오고 겨우 물이 오른 백양나무 가지엔 코스모스의 꽃잎같이 해맑은 흰 구름이 쳐다보인다. - 김광균 <산산정> 전문
우리는 위에 예시한 시에서 석벽, 노대, 양관, 성당, 노트 피아노, 우유 차, 코트 샴페인 등의 외래문물을 접하게 된다. 이는 1930년대의 상황으로는 매우 경이로운 어휘들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외래 문물은 외래의 꽃 이름과 연합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따라서 그의 시에 테니스코트, 교회당, 급행열차, 넥타이 등의 시어와 더불어 장미와 아네모네, 카네이선, 코스모스 등의 이국적인 꽃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우연한 결과가 아니다. 김광균이 선택한 외래의 꽃 이름은 외래 문물의 한 부분으로서 불가피하고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시에 끌어들인 꽃의 이름은 다만 꽃의 이름으로서 머물지 않고 전체적인 시의 구조와 특징에도 커다란 영향을 준다. 다음 시에는 김광균의 시에서 보았던 꽃의 이름과 대조되는 꽃들이 나오고 있다.
국화꽃이 피었다가 사라진 자리 국화꽃 귀신이 생겨나 살고
싸리꽃이 피었다가 사라진 자린 싸리꽃 귀신이 생겨나 살고 - <古調 2>
형이 접은 닥종이의 접시꽃은 육칠월의 꼭두서니 미리 당겨 묻히어 고깔 위에 벙글고
누님이 쑨 식혜국의 엿기름 냄새 속엔 벌써 숨어 우지지는 사월
청보리밭 치솟우는 종달새. -중략-
패랭이 끝 열두 발 상무 하늘 끝 대어 열 두어 번 내두르고 나는 동산 너머 내 새 연을 날리고 - <음력 설의 영상>
<古調 2>의 국화와 싸리꽃은 한국 전통 가옥의 울타리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들이다. 이 꽃들은 영너머 할머니의 마을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뜰에 자연스럽게 피어 우리와 관련을 맺고 있다. <음력설의 영상>에서 '접시꽃' 역시 닥종이, 고깔, 누님과 식혜. 엿기름 냄새, 청보리밭, 패랭이 열두발 상무, 연 등과 불가분의 관계로 어우러져 일체감을 이룬다. 이밖에도 서정주는 한국적이고 향토적인 꽃의 이름과 풀이름들을 구사하여 그의 시에 적절한 분위기를 창출하고 있다. 그의 시 <가시네>의 '바가지꽃'도 <풀리는 한강가에서>의 '민들레'나 꽃이 그중 하나다. 또 '쑥닢'도 한국적 특성을 가진 특별한 풀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서정주가 확실히 한국 전통에 뿌리를 둔 시인임을 긍정하게 하는 단서로서의 역할을 한다 하겠다.
3 자연적 개별적인 사물로서의 꽃
자연적 개별적 사물로서의 꽃이란, 꽃 그 자체를 객관적 자연의 일부, 개별적인 사물로 보는 견해다. 꽃은 춘하추동 사계절에 따라 발화시기가 다르며 그 색채와 향기와 생물학적 특성이 다르며 느낌도 다르다. 이러한 관점에서 꽃을 바라볼 때 우리는 꽃의 모양과 함께 거기서 유발되는 이미지 상징 및 의미를 구별하게 된다. 꽃과 인간의 예절을 연결시키고 꽃말을 만들고 하는 일이 모두 여기에서 연유한다. '그는 백합같은 여자다', '코스모스처럼 하늘거리는 몸매', '꽃이면 뭘해, 호박꽃인데' 이상의 말들에서 우리는 꽃이 가지고 있는 개별적인 이미지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상가에는 흰 국화를, 사랑의 고백에는 붉은 장미를, 이별을 고할 때는 노란 장미를... 하는 식으로 말이다. 물망초는 '나를 잊지 말라'이며 백합은 '순결'이고, 해바라기는 '사모의 정'이라는 꽃말은 이러한 점을 가설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연적 개별적인 꽃을 읊은 시는 다시 ① 꽃의 외양에 직접 대면하여 사생하듯이 표현한 것이 있는가 하면, ② 꽃으로부터 받은 인상, 꽃을 싸고 있는 분위기와 여운, 꽃이 있는 자리와 풍경들이 시인의 정서에 들어와 재구성된 시가 있다. 한국 시인의 시집 중에는 '꽃'이라는 말을 표제로 한 시집들이 많다. 김동리씨의 시집 「패랭이꽃」, 신순애의「술패랭이꽃」, 오세영의 「꽃들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 임신행의「동백꽃 수놓기」, 최은하의 「꽃과 사랑의 그림자」, 허영자의 「어여쁨이야 어찌 꽃뿐이랴」, 홍윤기의 ,「수수한 꽃이여」등이 그것이다. 김동리의 위 시집에는 <패랭이꽃>, <살구꽃>, <연꽃은>, <연꽃 필 때>, <연꽃 피는>, <목련>, <오동나무꽃>, <찔레꽃>, <들국화> 등의 시들이 시집의 앞부분에 실려 있으며 신순애의「술패랭이꽃」에는 <진달래>, <얼음새꽃>, <작약> 등을 비롯하여 꽃 이름을 표제로 한 100여 편의 시들이 꽃의 그림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파랑새 뒤쫓다가 들끝까지 갔었네 흙냄새 나무빛깔 모두 낯선 황혼인데 패랭이꽃 무더기로 피어 있었네 - 김동리 <패랭이꽃> 전문
연꽃 필 때 연꽃 보네 연꽃 보는 내 있음이 연꽃 속에 비치네
연꽃 질 때 연꽃 보네 연꽃 보는 내 있음이 구름 속에 흐르네 - 김동리 <연꽃 필 때>
김동리씨는 <패랭이꽃>에서 막연한 꽃이 아닌 특정한 꽃, 실재하는 패랭이꽃을 읊었음을 알 수 있다. 시 <패랭이꽃>은 다름 아닌 흙냄새 나무 빛깔 모두 낯선 황혼에 무더기로 피어 있던 패랭이꽃의 감동 때문에 씌어진 것이다. <연꽃필 때>는 연꽃을 읊었다기보다는 연꽃 필 때의 감회를 읊었다고 하는 편이 마땅하지 않을까 한다. 꽃에 대한 외모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꽃을 바라볼 때의 시인의 정회를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너는 서서 있고나 고요하고 잔잔한 거기에
너는 서서 있고나 신이 주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찌그러져 기울어진 나쁜 세상에서 인정스런 웃음을 띄우고
오랑캐꽃! 너는 거기에 서서 있고나 - 김춘수 <오랑캐꽃> 전문
위 김춘수의 시 역시 오랑캐꽃의 모습이라기보다는 그 꽃을 바라보고 있을 때의 시인의 마음이다. 신이 주신 그대로의 모습을 가진 것이야 비단 오랑캐꽃만이 아닐 것이며 웃음을 띄고 있는 것도 모든 꽃의 공통된 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신순애의 시는 어느 꽃의 특성을 예리하게 관찰하여 지적해 내는 데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잇다.
약초로 내린 뿌리 꽃마저 탐스러워 만월 같은 달무리가 창가에 다가서면
칠흑 속 백촉 전구들이 불 밝히고 있구나 - 신순애 <작약> 전문
가장 아름다운 것은 자연을 닮은 것이라고 할 수 있거니와 작약, 해바라기, 맨드라미의 외양을 묘사하고 해설하는 작업은 곧 그들의 미덕을 칭송하는 작업이다. 시는 비판이나 증오 객관적인 분석에서 자라나지 않고 사랑과 찬송을 통해서만 성공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시는 그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이다. 개별적 자연물로서의 꽃을 그려내는 시가 꽃의 묘사를 우선적으로 한다면, 인간의 정서에 투영된 꽃을 재구성한 시는 인간 정서에 용해된 꽃의 이미지를 우선으로 하는 시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시인이 어떤 사물을 시화함에 있어서 사물의 입장에서 충실히 표현해야 하는가, 혹은 인간 정서에 투영된 사물을 그려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표현하든지 표현의 완성을 이루었다면 가히 성공을 거두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맺음말
발표자는 지금까지 한국 시에서 운용된 꽃의 모습을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 보았다. 그러나 꽃이 시에서 어떻게 표현되었든지, 꽃이 아름다움의 대상이며 높은 존재가치를 대변한다는 점은 어디서나 공통된다. 지금까지 그렇게 되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꽃은 문학의 중요한 제재로 존속할 것이다. 어머니나 사랑이 유행을 능가하여 지속적인 제재가 되듯이 꽃도 그럴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꽃을 표현하는 형식상의 변천은 불가피하겠지만 꽃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의미, 아름다움과 생명과 사랑의 대명사로서의 이미지와 상징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인류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에 적합한 대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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