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수정 강좌] 15.오브제에 충실해야 한다 --- 박제천
15. 오브제에 충실해야 한다 -박제천
쫇 대상 작품
파도타기
1* 흰 파도와 같은 샌달이
2* 상점에 진열되어 있다.
3* 나는 걸음을 멈춘다.
1* 발끝을 내려다보며
2* 약간 헐렁해 보이는
3* 운동화를 들어 땅을 차 본다.
1* 아직은 신을 만하구나!
1* 자신에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2* 운동화를 내려다 보았지만,
3* 아직은 신을 만하다.
4* 저녁찬을 사러나온 아줌마들이
5* 간간이 부딪치며 오가고 있다.
1* 다시 바닷가에 버려진
2* 소라껍질 같은 샌달을 바라다 본다.
1* 영화관 간판과 병원빌딩 사이로 노을이 진다.
2* 지는 노을을 향해 걷고 있는 손엔
3* 운동화가 비닐에 쌓여 흔들…
1* 발은 벌써 파도타기를 한다.
쫊 평설
이 작품의 가장 큰 결점은 시에서 선택한 오브제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오브제로 샌들을 선택했다면, 시의 진행은 샌들에 치중해야 한다. 그것을 바다와 연결시키기 위해 첫행부터 ‘흰 파도와 같은 샌들’로 시작함으로써 초점에 혼란을 가져온다. 초심자들은 이렇듯 근사한 표현을 하고자 또다른 오브제를 수식으로 끼워넣는 버릇이 있다.
이 시에서 작자가 하고 싶은 말이 4연에 솔직하게 나타나 있지만, 4연이 삭제되어야만 한다는 점에서 아이러니컬하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시인 것이다.
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서술하기 보다 이미지나 상징을 통하여 드러낸다. 앞에서도 누누이 강조한 바 있지만, 시가 산문과 구별되어지는 부분이다. 물론 소설에서도 시의 이미지나 상징에 해당하는 묘사라는 것이 있다. 묘사는 반복적인 서술로서, 여러 문장을 통해 내용을 풀어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시에서는 단 몇 행의 짧은 문장으로 나타내야 한다. 그것이 시의 어려움이기도 하다.
이 시의 또다른 문제점은 4연에서 작자의 의도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데, 전체적인 이미지에서 그 의도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단성이 없는 자신의 성격을 여름 샌달에 비유하고자 했으나, 그 갈등의 과정이 생략되어 시의 재미가 덜하다. 독자들이 바라는 것은 작자가 겪는 갈등의 모습이다. 독자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면 그 시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또 갈등의 골이 깊을수록 독자의 공감대는 커진다. 이 시가 어떤 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4연의 4, 5행과 6연의 1행은 군더더기와 같은 표현이다. 시는 압축과 긴장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앞뒤 행이나 전체적인 의미와 연계성을 갖지 못한 문장은 시의 완성도를 떨어뜨린다. 그 문장을 꼭 쓰고 싶으면 시의 내용과 연결될 수 있도록 다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불필요한 문장부호는 삼가해야 한다. 6연의 3행의 말줄임표는 꼭 필요한 문장부호가 아니다. 시에서는 문장부호 하나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유의하여 사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시의 제목이 과연 적합한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시의 주제는 ‘결단성 없는 자신에 대한 갈등’이다. 그것을 하얀 샌들이라는 오브제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파도타기’는 작자의 의도와는 동떨어진 제목이다. 파도타기를 하러 바다에 가고 싶다는 단순한 의도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제목은 시의 내용을 대표하거나 보완해주는 것이 좋다.
수정한 시를 읽어보자. 군더더기의 표현을 끌어다 갈등 구조를 만들고, 4연을 되풀이함으로써 갈등을 심화시켰다. 제목은 오브제인 ‘샌들’에서 가져왔다.
쫈 수정
내 마음의 샌들
흰 파도와 같은 샌들이
상점에 진열되어 있다.
나는 걸음을 멈춘다.
저녁찬을 사러 나온 사람들,
해변가를 걷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간간이 부딪치며
나는 먼 바다의 백사장 위에 서 있다
바닷가에 버려진
소라껍질 같은 샌들을 바라다본다.
영화관 간판과 병원 빌딩 사이로 노을이 진다.
그 어느 날의 노을진 바닷가를
나는 걷고 있다.
다시 바닷가에 버려진
소라껍질같은 샌달을 바라다본다.
지는 노을을 향해 걷고 있는 손엔
비닐에 쌓인 운동화가 들어 있다.
발은 벌써 파도타기를 한다.
출처:http://www.poemworld.co.kr/포엠월드 창작실기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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