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의 사랑
안녕하세요. 잘 주무셨지요?
가을이 점점 더 깊어지고, 여기 저기서 가을병을 앓는 사람을
많이 만납니다.
그야말로 시를 쓰기에 좋은 계절이지요.
오늘은 시를 쓰는데 언어를 왜 사랑해야하는가
간단히 생각해보기로 하지요.
예술엔 여러 장르가 있는데 특히 언어를 사용하는 예술이 바로
시입니다. 도공이 한낱 흙으로 그 아름다운 도자기를 구워내듯
이 시인은 아무나 쓰는, 어디에나 있는 그 말들로
참으로 빛나는 시를 빚어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언어를 어떻게 쓰면 좋은 시가 되는가만 알면
되겠지요.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시인은 언어를 떠나서 살
수가 없습니다.
언어와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 이며 천생연분입니다.
언젠가 라디오 프로그램에 노인들을 위한 퀴즈프로그램이
있었는데, 한 노인 부부가 나와서 퀴즈를 풀었답니다.
이 때 사회자가 영감님에게 "천생연분"이란 카드를 주었습니다.
영감님이 설명을 하고 할머니가 맞추는 퀴즈인데
영감님이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이 것쯤이야 하고는
"할멈과 나 사이" 하니까
할멈이 생각도 할 필요도 없이 불쑥 "웬수" 하더랍니다.
방청석은 그야말로 폭소의 도가니가 되고
영감님은 안절부절하더니
"두 자 말고, 네 자, 네자"
하니까
할머니가 또 두 말 없이
"평생 웬수"하더랍니다.
우스개 소리 이지만
우리 시를 쓰는 사람들에겐 언어가 이렇듯 평생 원수가
되어서는 안되고 천생연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언어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이 소원이
겠지요. 그러나 누구도 사람이 만든 언어를
능수능란하게 쓰기엔 어렵습니다.
오히려 답답하고 막막합니다.
특히 좋은 경치를 보았거나,
아아, 이 건 시가 될 것 같아 하는 경험을 하였어도
막상 시를 쓸려하면 제대로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해
안타까울 때가 많을 것입니다.
저도 어디 경치 좋은데 가면 주윗 분들이
즉석 시 하나 지어보라고 강요당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 때마다 "아, 좋다" 이 것이 시요.
하고 웃고 말아버립니다.
천상병 시인의 <무명>이란 시를 한번 읽어봅시다.
뭐라고
말 할 수 없이
저녁 놀이 져 가는 것이다
그 시간과 밤을 보면서
나는 그 때
내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봄도 가고
어제도 오늘 이 순간도
빨가니 타서 아, 쓰러지는 놀빛.
저기 저 하늘을 깎아서
하루 빨리 내가
나의 無名을 적어야 할 까닭을,
나는 알려고 한다
나는 알려고 한다
천상병 시인은 <귀천>으로 유명하지요.
그의 시에는 어려운 말이 없이 어린아이와 같은
말로서 시를 쓰는 시인입니다.
이런 대시인도 노을이 지는 모습을 표현하지 못하고
"뭐라고/말 할 수 없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언어를 사랑해야 합니다.
시에 적합한 최상의 말들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 말을 더욱 많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잠깐 쉬면서 커피 한 잔씩 드시고
계속 할까요?
사실 국어사전을 보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말들이나
알면서도 쓰지 못하고 버려두는 말, 우리에게 잊혀져가는
좋은 말들이 너무나 많거든요.
그런 말들을 일부러 찾거나, 다른 사람의 글에서
보면 꼭 적어놓는 습관을 들입시다.
사투리나 고어도 시에서는 아주 긴히 쓰이는 말입니다.
언어의 정부라고 불리는 서정주는 특히 구수한
전라도 방언을 아주 잘 구사하였지요.
야생화나 나무들, 저 많은 산새와 벌레들 이름까지도
많이 알아두거나 기록하는 습관을 들입시다.
꽃이름이 예뻐서 그 이름 자체가 시적 분위기가 물씬 나는
것도 참 많지요.
여기 문학의 방에 있는 제 시중에 "눈부처"라는 순 한국말
이 있는데요. 이의 뜻은 눈동자에 비치는 사람의 형상을
두고 하는 말로 상대방의 눈동자에 비치는 내모습이 되겠
지요.
저는 처음에 이 단어를 알았을 때 너무너무 기뻤답니다.
아무튼 여러분은 이제부터라도 늘 쓰는 말을 버리지 마시고
자기의 가슴에, 머릿속에, 노트에, 메모장에
늘 외워두고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시기로 하십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시인의 좋은 시들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너무 어려운 시를 택하시지 말고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시나, 많이 알려진 시
또 처음보는 시라도 쉬운 시부터 보시는 게 좋습니다.
여기 박용철님의 시 <떠나가는 배>를 조용히 소리내어
읽어보면서
오늘 강의는 이만 마칩니다.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군들 손쉽게야 버릴거냐
안개같이 물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 사랑하던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쫒겨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거냐
돌아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헤살짓는다.
앞 대일 어덕인들 마련이나 있을거냐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냐
나 두 야 간다
출처 : 시의 향기로 여는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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