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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와 함께 - 김현승의 [가을 기도]

시 창작 자료방

by 백연심 2006. 9. 11.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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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김현승(1913-1975), [가을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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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물이 수식을 벗고 본래적인 모습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지요. 그런데 지금 시인은 세상의 많은 일 중에서 하필 기도와 사랑 그리고 고독을 기원합니다. 그에게 기도란 <낙엽이 지는 때>라는 본질적인 시간에 <가장 겸허한 모국어>로 절대자와 만나는 방식이지요. 사랑은 <오직 한 사람>이라는 타자와의 전적인 관계를 통하여 자신을 완성하고 우주와 합일하는 일이고요. 또한 고독은 철저히 <홀로 있음>을 통하여 자신의 실존을 회복케 하는 상황이 아닐까요? 그리하여 시인은 현존재를 초월하려는 자신의 실존을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로 표상하는 것이지요..... 강물에 떠내려가는 가랑잎처럼 존재망각의 일상성에 휩쓸리고 있는 우리들도, 이 가을에는,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며 한 번쯤 저런 기도를 해 봄이 어떨는지요?

이 진 흥 (시인) - 매일신문, 2005/10/29


출처 : 시의 향기로 여는 마당
글쓴이 : 김영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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