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을 달성하려고 애를 써서 노력하고 정성을 들이는 사람에게 격려와 위로를 겸해서 하는 말이 있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쉽게 말해서 공짜는 없으니 공을 들이면 그만큼의 효과도 얻게 된다는 비유이다.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이치를 놓고 굳이 이렇게 힘주어 말하는 까닭이 있다.
공짜를 너무 좋아하는 분위기에 행여 휩쓸릴까를 경계해서 하는 말이다.
심지어는 양잿물도 공짜라고 한다면 마다하지 않는다는, 극단적인 속언까지 만들어졌다.
양잿물은 수산화나트륨이라는, 독성이 매우 강한 염기성 약품으로 살갗에 닿으면 심한 화상을 입지만 세제가 귀한 시절에는 묵은 때를 우려내기 꼭 좋아서 집집마다 조금씩 조심스레 간수하고 있었으므로 목구멍에 억지로 밀어 넣기도 했다.
공짜라면 이런 극약도 마다하지 않는 살벌한 사회 분위기라면 길을 걷더라도 매우 조심해야겠다.
공짜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멀쩡한 사람에게 겁을 주고 잔잔한 마음을 들뜨게 할까.
이름난 벽화점이나 대형 할인 매장에서 값을 낮춰 판다는 소문이 나면 그걸 얻겠다고 밤잠을 설치면서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꼭두새벽부터 나가 줄을 서서 기다리며 그 긴 시간을 축낸다.
거기에는 공짜는 아니지만 거의 근접하는 만큼의 흡인력이 있기 때문인데, 그 고생과 시간을 상품과 비교했을 때 과연 상쇄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를 생각해 볼 일이다.
더구나 형편없는 상품을 비싸게 팔 작정으로 싸구려 생필품을 눈가림삼아 공짜로 얹으면 인파가 구름처럼 꼬인다.
그러다가 달콤한 유인책에 넘어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들고 왔다가 낭패를 당하고 나서야 후회하지만 이미 늦다.
공짜가 내린 벌이다.
그렇다면 진짜인 공짜는 없을까.
아닌게아니라 전에는 비슷한 것이 있긴 있었다.
나들이할 때 신으려고 애써서 닦아 마루 끝에 엎어 놓은 고무신 한 짝으로 엿을 사 먹고, 겉보리 한 되와 참외 두엇을 물물 교환하던 시절로, 이름 하여 맛보기라면서 내미는 엿가락이 맘을 홀딱 빼앗던 때였다.
어지간히 의지가 굳지 않아서는 손을 떼기 어려운 맛보기 때문에 부모님께 혼쭐나기 일쑤였지만 여기에는 공짜라는 덤에 대한 매력이 꽉 달라붙어서 엿장수의 가위 소리를 기다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따져 보면 그 맛보기가 정말 공짜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께 혼쭐이 났고, 나머지 고무신 한 짝은 영영 쓸 수 없게 되었으니 무지하게 비싼 공짜가 된 셈이다.
그래서였는지 이 세상에는 순전한 거짓말이 셋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손해보고 물건 팔았다는 내숭이란다.
설령 이 사람에게 손해를 보고 팔았을망정 저 사람에게 씌워서 판다든지, 그도 아니면 어떤 기회였건 손에 잡히기만 하면 그 벌충을 하기 마련인데, 온전히 손해 보면서까지 물건 팔 리 없으리라는 짐작으로 지은 말이다.
간간이 행사니 이벤트라는 이름으로 제대로 된 상품에 반값이라느니 반값 이하라는 말을 붙여 꼬드긴다.
깎은 만큼의 공짜가 정말일까를, 세 가지 거짓말 중의 하나인 장사와 연결시킨다면 정답은 자연스레 나온다.
그럴듯한 상품에 씌우거나 다른 수단으로 이문을 챙길 것이 분명하므로 공짜는 아니라는 말이다.
세상의 이치가 이러한데 공짜에 너무 집착하고 쉽게 유혹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복권이다.
더구나 요즘에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큼직한 덩치가 간간이 세상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바람에 거기다 눈총을 돌리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이것을 제대로 한번 걸기만 하면 순식간에 팔자를 고치는 판이니 공짜에 조금만 관심을 가졌다면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너무 심하면 사회 문제가 생긴다고 해서 견제하기도 하는 눈치지만 그걸 개의할 얼뜨기는 없고, 거기까지 생각할 만큼으로 여지가 있거든 복권에서 손을 떼라고 할 정도로 여기에 한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어렵단다.
그렇다면 복권에 당첨되어 팔자를 고치게 된 돈은 과연 공짜일까.
큼직한 종이 가방에 가득 채워진 뭉칫돈이 잘못 전달되었지만 그 주인이나 상대방이 세상에 밝혀지면 사회에서 매장되는 치명타를 맞게 되므로 누구든지 먼저 보는 사람이 가져가도 아무런 탈이 생기지 않는, 그렇고 그런 성격을 띤 공짜가 아니다.
큰맘 먹고 복권에 투자한 욕심이 서려 있고, 혹시나 하는 맘에 지갑을 연 허영도 포함되어 있으나 공짜는 아니다.
길에서 우연히 주운 엽전이 공짜라고 할 수 있을까.
엽전을 잃은 주인의 마음이 어떠할까를 생각한다면 꼭 공짜라고만 할 수는 없다.
부동산에 투자해서 쥔 투기꾼의 떼돈도 공짜라고 볼 수 있을까.
이 역시 공짜는 아니다.
투자 기회의 정확한 포착이나 이재 기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벌어들인 떼돈만큼의 고통을 다른 사람이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찜찜한 맛을 영 지우기 어렵다.
성형 수술로 몸매를 잘 다스리겠다는 욕심이 알게 모르게 번진다.
나중에야 삼수갑산을 갈망정 추남•추녀보다는 미남•미녀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사회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추남•추녀가 수술해서 미남•미녀로 바뀌었다면 세상살이의 맛이 다르고 사는 재미도 전과는 같지 않으리라.
그리하여 세상을 공짜로 얻었다고 쾌재를 부르리라.
그렇다면 그 후손도 공짜로 얻은 세상을 즐기면서 선조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질까.
욕심과 허영으로 얻은 세상은 공짜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물리학의 기초에 속하는 부분에 에너지 보존 법칙이라는 이론이 있다.
에너지는 무(無)에서 만들어지지 않고 완전히 사라지는 일도 없다는 이론으로 형태를 바꾸거나 물체 사이를 옮겨 가더라도 전체적인 양은 변하지 않고 어딘가에 잠재되어 있다가 상황이나 조건이 맞으면 얼마든지 다시 드러난다는 말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그렇고 양자론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성격을 가진 정서가 바탕에 깔린 세상살이라고 해서 자연의 이치를 벗어나는 일은 결코 생기지 않는다.
대형 할인 매장에서 영수증 이외의 쪽지를 간혹 받고 광고를 겸한 우편물에 상품권을 닮은 응모권이 끼워져 배달되기도 한다.
바로 복권과 비슷한 물건인데, 상상을 초월하는 현금이나 물품이 걸려 있어서 곧바로 버리기가 어쩐지 아까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인터넷에 들어가 응모해 보지만 신상 정보만 홀랑 가져가고 매양 꽝만 내보낸다.
도대체 무엇인가 걸리는 행운이 지금껏 단 한번도 없었으니 공짜를 기대했다가 실체가 없는 내 물건만 뺏긴 꼴이다.
그렇게나 비싸고 많은 물건이 누군가에게 뽑혀갈 터이고 따라서 그 비용도 부담할 수밖에 없다는 상상을 하면 부아가 부글부글 끓어오르지만 꾹 참는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을 되새기며…….(06.07)
출처 : 시의 향기로 여는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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