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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흰색의 풍경 / 이성희

해설이 있는 시

by 백연심 2008. 1. 2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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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의 풍경 / 이성희 (1959~ )


아무 오갈 데 없을 것 같은 운수납자, 외로운 선객(禪客)이
누빈 누더기 솜옷을 입고 빈 바랑을 지고 아득히 눈 내리는
먼 들길을 홀로 가는 뒷모습이 나는 좋다. 눈밭에 언뜻언뜻
지워지기도 하다가,사람이 사라지고 난 다음에도 잠시 남아
빈 들길을 떠도는, 끊지 못한 숱한 인연들로 누빈 누더기 적
막이 나는 좋다. 길이 끝난 다음에도 눈은 내리는가? 눈이
그치면 적막은 또 어느 길을 떠돌아야 하는가? 눈이 그친 들
녘에 들꽃 한 송이 필 때, 우주도 새로 피는가? 온 우주가 담
겨도 꽃은 쓸쓸한가? 대답이 지워진 질문처럼 천지 가득 내
리는 눈발, 해탈하지 못한 그리움의 흰 세상.

[해설]
세상의 모든 인연과 결별하고자 길을 나선 운수납자의 누더기
옷을 누빈 자국은, 살아있는 자를 따라붙은 그림자처럼 세상엔
그 어떠한 해탈이나 초월도 없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선객이 아득히 눈 내리는 길을 홀
로 가는 것은, 그 불가능성에 의해 존재하게 되는 또 다른 것에
대한 그리움, 근본적으로 상실의 충만 또는 결여의 아름다움을
아는 까닭이다. 자신의 '아무데도 오갈 데 없음'은 되레 '아무 곳
에도 갈 수 있음'을 의미함을 문득 깨달은 까닭이기도 할 터이다.
-시인 임동확

*광주일보17074호
출처 : 시의 향기로 여는 마당
글쓴이 : 김영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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