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창작강의실

수필문학입문 8 - 문세

백연심 2007. 4. 1. 00:15

윤오영(1907~1976)

수필문학입문 - 문세



내용의 줄거리를 따라 정서를 실어가는 물줄기가 수필의 문맥이라면 이 물줄기를 밀고 나가는 기세가 곧 문세다. 이것이 없으면 글의 힘이 없고, 생생하게 넘쳐 흘러 독자를 육박하는 긴장이 없다. 수필에는 개성에 따라 온아, 청신, 전면纏綿이 있는가 하면, 침울, 침잠, 강개가 있으며, 재승才勝한 글이 있는가 하면, 기승氣勝한 글, 이승理勝한 글이 있다. 단 내용과 소재에 따라서도 변화가 스스로 다양하다. 그러나 정서적인 글은 애상적이거나 저속한 것을 기忌하므로 순수하고 섬세한 것이 상승이 되고, 재승한 글은 경박하고 천루淺陋한 것을 忌하므로 예리하고 진실한 것이 상승이 되고, 기승한 글은 규각圭角의 노출과 편강偏强한 것을 기忌하므로 관대와 강직을 겸한 것이 상승이 되고, 이승한 글은 체삽다변滯澁多辯하거나 지리잡박支離雜駁한 것을 기忌하므로 기경奇警하고 호탕한 것을 상승으로 한다. 그 어느 것을 물론하고 생생한 감동력을 주는 것은 오직 문세에 있다. 만장비폭萬丈飛瀑이 콸콸 쏟아지기도 하고, 층층으로 떨어지는 물, 양양洋洋히 굽이치는 물, 크고 작은 물 소리와 흐르는 모습은 그 밑바닥의 지형과 석벽石壁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바닥에 흐르는 작가의 정열과 문맥의 배치에 달려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글은 하나의 이상론이요, 세간에서 유행하는 글에서 그 문례를 찾기도 어렵거니와, 더욱이 초심자에게는 지나친 주문이 될지도 모르겠다. 다만 어느 정도라도 글을 끝까지 몰고 나가는 문세를 살펴볼 필요는 있으니 다음에 예문을 들어 검토해 보기로 하자.



헐려 짓는 광화문



헐린다 헐린다 하던 광화문은 마침내 헐리기 시작한다. 총독부 청사 까닭으로 헐리고 총독부 정책 덕택으로 다시 짓게 된다. 원래 광화문은 건물이다. 울 줄도 알고 웃을 줄도 알며, 노할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아느 사람이 아니다. 밟히면 꿈틀거리고, 죽이면 소리치는 생물이 아니라, 돌과 나무로 만들어진 건물이다. 의식 없는 건물이요, 말 없는 건물이다. 헐고 부수고 끌고 옮기고 하되, 반항도 회피도 기뻐도 설워도 아니한다. 다만 조선의 하늘과 조선의 땅을 같이 한 조선의 백성들이 그를 위하여 아까워하고 못 잊어 할 뿐이다. 오랜 동안 풍우를 같이 겪은 조선의 자손들이 그를 위하여 울어도 보고 설워도 할 뿐이다. 석공의 망치가 네 가슴을 두드릴 때, 너는 알음이 없으리라마는 똑다닥 소리를 듣는 사람이 가슴 아파하며, 역군의 둔장이 네 허리를 들출 때 너는 괴로움이 없으리라마는, 우지끈하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허리 질려 할 것을 네가 과연 아느냐 모르느냐?

팔도 강산의 석재와 목재 인재의 정수를 뽑아 지은 광화문아. 돌덩이 옮기기에 억만 방울 피가 흐르고, 기왓장 한 개 덮기에 억만 줄기 눈물이 눈물이 흘렀던 광화문아. 청태 끼인 돌 틈에 이 흔적이 남아 있고, 풍우 맞은 기둥에 그 자취가 어렸다 하면, 너는 옛 모양 그대로 있어야 네 생명이 있으며, 너는 그 신세 그대로 무너져야 네 일생을 마칠 것이다. 풍우 몇 백 년 동안에 충신도 드나들고, 역적도 드나들고, 수구당도 드나들고, 개화당도 드나들던 광화문아. 평화의 사자도 지나고, 살벌의 총검도 지나며, 일로日露의 사절도 지나고, 청국의 국빈도 지나던 광화문아. 그들을 맞고, 그들을 보냄이, 너의 타고난 천직이며, 그 길을 인도하고, 그 길을 가리킴이 너의 타고난 천명이었다면, 너는 그 자리 그곳을 떠나지 말아야 네 생명이 잇으며, 그 방향 그 터전을 옮기지 말아야 네 일생을 마친 것이다.

너의 천명과 너의 천직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거니와, 너의 생명과 너의 일생은 허리는 그 순간에, 옮기는 그 찰나에, 마지막으로 없어지고 말았다. 너의 마지막 우명을 우리는 알되 너는 모르니, 모르는 너는 모르고 지내려니와, 아는 우리는 어떻게 지내랴? 총독부에서 헐기도 헐되, 총독부에서 다시 지어놓는다 한다. 그러나 다시 짓는 그 사람은 상투 짠 옛날 그 사람이 아니며, 다시 짓느 그 솜씨는 웅건한 옛날의 그 솜씨가 아니다. 하물며 이때 이 사람의 감정과 기분과 이상이야 말하여 무엇하랴? 다시 옮기는 기곳은 북악을 등진 옛날의 그곳이 아니며, 다시 옮기는 그 방향은 경복궁을 정면으로 한 옛날의 그 방향이 아니다. 서로 보지도 못한 지가 벌써 수 년이나 된 경복궁 한 대궐에는 장림長霖에 남은 궂은비가 오락가락한다. 광화문 지붕에서 뚝딱하는 망치 소리는 장안을 거쳐 북악에 부딪친다. 그리고 애닯아 하는 백의인의 가슴에도 부딪친다. (설의식)


"헐린다 헐린다 하던 광화문"서부터 "장안을 거쳐 북악에, 백의인의 가슴에 부딪친다"까지 막힘없이 한숨에 몰고나와 끝에서 독자를 어필하는 것은 흉중에 쌓인 울분한 감정이 몇몇 충절과 굴곡을 바닥으로 타고 흘러나오는 그 문세에 있다. 이런 글을 많이 읽어서 항상 감격에 잠겨보는 것은 스스로 박력 있는 문세를 기르는 데 필요하다. 그러나 그 문장의 형식만을 본뜰 때, 자칫하면 과장과 공소한 흥분에서 오는 웅변조의 진부한 관념적 표현이 되기 쉽다. 이른바 범을 그리려다 개를 이루게 되기가 쉽다.




예술가와 지조




소극적 표현으로써 예술의 특질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것은 타협을 불허하는 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것은 오직 미만 추구하고 여하한 추와도 타협할 수 없다. 이것이 인간의 모든 다른 사회적 활동과 구별되는 예술의 특질이다. 이는 마치 과학이 오직 진리만을 상대로 하고, 여하한 비진리와도 야합하지 않는 것과 같다. 만일 예술이 추와 타협할 때, 그것은 우상은 될 수 있되 벌써 예술은 아니다. 만일 과학이 비진리와 타협할 때 그것은 미신은 될 수 있되 과학은 아닌 것과 같다. 그러므로 예술에는 오직 철저가 있을 뿐이요, 애매가 있을 수 없다. 거기에는 오직 결단이 있을 뿐이요, 준순逡巡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예술을 그의 전생활로 하는 예술가에 있어, 예술의 성질은 곧 그의 인간적 성질로 화한다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참 예술가이면 완전이 아니면, 차라리 무를 취하는 것이다. 이것을 다시 뒤집어 말한다면 이와 같은 성질을 가진 사람만이 참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추호의 타협도 불허하는 서릿발 같은 에술가를 가리켜, 기인, 결벽, 고집 등의 말로 부르는 것이 이 까닭이다. 오직 타협만이 유일의 생활방법이 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이와 같은 성격이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것도 또한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생각건대, 이와 같은 비타협적 성격, 즉 자기의 소신을 끝까지 관철하려고 하는 이 강력한 심성이야말로 예술로 하여금 절대성을 갖게 하는 원리인 것이다.

우리는 이 진리를 예술사상의 허다한 사실史實로써 증명할 수 있다. 가까운 예로서 19세기 말엽에 배출된 일련의 천재를 보라. 고흐, 고갱, 루소, 세잔 등. 그들의 절세의 천재와 정열과 또 그들의 우대한 일들에 대하여, 당시의 프랑스 사회는 여하히 보답하였던가. 갖은 비방과 조소와 모욕으로써 그들을 정신적으로 질식케 하였다. 물질적으로 기아의 구렁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환경과 타협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소신에 반하는 모든 것과 타협하지 않았다. 오직 한 갈래길,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로 곧장 나아갔다. 그 결과는 어떠하였는가. 인류의 역사 위에 후광이 찬연한 최고 최귀의 수많은 보배들을 그들은 우리에게 남겨 주었다. 그들이 이와 같은 형극의 길을 걷고 있는 동안 다른 일방에서는 권력 앞에 아유阿諛하는 것으로 얻은 아카데미라는 상아탑 속에서 일대의 권세와 영화를 즐기던 수많은 예술가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들의 예술은커녕 그들의 이름조차도 들을 수 없는 것이다.

옳은 길을 밟기 위하여 여하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고, 여하한 폭력 앞에도 굴복하지 않고, 오직 한 갈래 길로만 나아가는 심적 태도를 가리켜 지조라고 부른다면, 예술에 순殉한 고흐 등의 태도는 예술가적 지조의 전형이라 할 것이다. 예술가의 하나의 본질적인 성질이 되어 있는 지조는 반드시 예술활동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요, 사회적 활동에도 발현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추와 타협할 수 없는 성격은 같은 이치에서 악과도 타협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혁명기의 쿠르베는 직접 혁명에 참가하여 당시의 반동정권과 용감히 투쟁하였다. 그들의 일이 다시 전복되자, 그는 국외로 망명하지 않으면 안되게까지 되었던 것이다. 이 정열적 예술가의 혁명예술이 미술사상에 있어 여하한 의의와 가치를 가졌는가를 우리는 잘 안다. 육순이 넘은 코로는 참략자 프러시아군을 조국 강토로부터 구축 섬멸하기 위하여, 그 자신이 한 병사로서 출전할 것을 당시의 정부에 탄원하였던 것이다. 불의를 보고서 그것을 쳐 없애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그들의 열화 같은 성격의 표현인 것이다. 코로의 그 청순하고 고귀한 예술이 회화사상 불멸의 위치를 가지고 있음을 또한 우리는 안다.

이와 반대로 혁명의 와중에 있어 다비드의 태도는 어떠하였던가. 그는 루이왕조로부터 혁명 정부 밑으로 재빠르게 자리를 옮기고, 다시 총재정치와 집정정치에의 굴복을 거쳐서, 또 다시 황제 나폴레옹에 봉사하였던 것이다. 나폴레옹의 총애를 독차지하고 당대 예술계에 군림하였던 다비드.그의 예술은 어떤 것이었던가. 수삼 차를 넘는 재빠른 변절로 시대의 격랑을 교묘히 타고 나간 다비드! 이해에 총명한 그는 예술에 있어서도 철두철미 계산에 의하여 예술을 만들었다. 계산에 의하여 나온 예술, 그것은 다만 예술적 형식이요, 예술은 아니다. 그의 유일한 장사 밑천인 고전주의 예술의 냉혈성과 형해성形骸性은 이것을 우리에게 충분히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비드는 예술의 이름을 빌린 한낱 상인이었고 예술가는 아니었던 것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지조가 없는 예술가! 적은 이익에 몸을 팔고, 즐겨 불의의 앞에 주구가 되는 예술가! 우리는 그들에게서 예술의 모독 이와에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돌연히 내습한 해방, 외국 군대의 진주, 군정, 정권을 싸고 도는 잔인한 투쟁, 온 나라가 아수라처럼 들끓는 요즈음, 그 틈을 타서 일부 예술 상인의 준동을 본다. 과거의 역사가 그러하였듯이 이들 또한 청산되는 날이 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소멸될 때까지 그들이 끼치는 해악을 우리는 경시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오지호)



예술가의 타협할 수 없는 성격에서부터 붓을 일으켜 과거의 두줄기의 예술가군을 신랄하게 논평하고 사의辭意 점점 격앙하여 결론이 거의 끝난 곳에서 비로소 현실을 일격一擊 일탄一嘆하며, 엄숙하게 끝을 막았다. 이 이른바 문세를 얻은 것이라 여향餘響이 있다. 평소의 소신을 기반으로 감추지 못하는 분노의 감정이 자연히 유로流露됨을 본다. 만일 "돌연히 내습한 해방" 운운한 데 주력을 두고 현실을 장황히 비판하고 도도한 논전을 폈다면 하나의 평론은 될지언정 수필은 아니다. 이것이 평론과 수필의 분기점이다.





여학교의 [승무]


꽃보다도 더 곱고 달보다도 더 아름다운 묘령의 젊은 승녀가 먹 장삼 흰 고깔에 붉은 가사를 어깨에 걸치고 외씨 같은 흰 버선을 내디디어서 그윽히 흐르는 백태의 곡선을 지어 슬몃슬몃 늠실거리며 춤을 추기 시작하다가 정열이 점점 오르기 시작하니 홀연히 먹 장삼을 걷어 붙이고 섬섬옥수를 드러내어, 마침내 체를 잡아 북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동동거리는 북소리와, 하느적거리는 어깨춤과, 요선腰線에 약동하는 탕미蕩美가 처염凄艶할 때, 드디어 계집의 정열욕화는 활화산처럼 용솟음 쳐, 터져 올라와서 자기가 수도수녀인 것을 망각하고, 먹 장신 흰 고깔을 벗어 내동댕이치고, 북을 치며 춤을 추다가 북을 쳐서 그래도 애련 삼매경 속에 빠지면서 봄바람에 호탕한 파계 여승이 되어 버리는 것이 승무라는 것이니, 승무는 회춘의 음탕한 춤이요, 육의 본능을 구가하는 무언의 시극詩劇을 겸한 우리 나라 민속 무용의 하나다.

해방 이후에 외국의 인사가 빈번히 한국에 왕래하게 되자, 우리는 이들에게 한국 고유의 고전무용을 소개하고 보이기 위해서, 환영희의 여흥으로, 무대 위의 연기로 가끔 무용 전문가가 보여주는 것은 좋았으나, 이것이 차차 번지고 퍼져서 여학교 학예회에까지 한국의 고전무용이라하여 이것을 여학생에게까지 추게 하는 일이 있다. 더욱이 한심한 것은 국민학교 5, 6학년 정도의, 코를 졸졸 흘리는 어린애에게까지 먹 장삼에 흰 고깔을 씌워, 이 춤을 추게 하고 외빈 앞에 박수갈채를 받게 한다. 너무도 잔인한 일이 아닌가. 춤도 안되려니와 탕녀의 멋을 알아야 춤이 될 텐데, 춤도 아니고 장작개비다.

근본을 캐어 보지도 않고 고전이라면 무엇이든지 가르쳐야 되는 줄 안다. 나는 어느 여학교 학예회에서 여학생이 추는 승무를 한참 동안 딱하게 바라보다가, 회가 파한 뒤에, 교장선생님께
"교장선생님 승무의 유래를 아시오?"
하고 물으니
"그저 고전무용인 줄만 알지, 잘 모릅니다"
하고 솔직하게 대답한다.
"이것은 수도하는 수녀가 회춘을 하여 파계하고 놀아나서 실행失行을 하는 춤이니, 아예, 여학생들에게 다시는 추게 하지 마시오"
하니 그때야 교장선생님은 깜짝 놀라며 황연恍然히 깨달은 듯했다.

그러나 다음번 학예회 때, 한번 가보니 여전히 여학생이 승무를 춘다. 교장은 학무에 바빠서 잊어버린 모양이다. 그러나 보통사람이 아니라, 학교의 어른이다. 승무를 여학생에게 추게 해서는 아니 된다. 그리고 무슨 춤이라는 것쯤은, 상식으로라도 미리 알아야 할 것이다. (박종화)



승무를 묘사한 상반부의 미문과 하반부의 건조한 문장이 조화를 잃어서 문세가 혼미해졌다. 문장의 기복과 층절層折도 없고 한 줄기로 몰고 나가는 주력도 없어서 독자에 따라 느끼는 감명도 성실하게 받아지지 않는다. 후반부의 훈계나 교육자의 불찰을 깨닫기보다 승무의 멋만을 생각하고 웃기가 쉽다. 탕미蕩美니 탕녀의 멋을 몰라 장작개비 같으니 하는 말도 이 글의 진실미와 무드를 해치는 표현이다. 감정의 통일과 구상의 정리에 소홀했다고 본다.

문맥과 문세는 표리의 관계에 있으니 막히어 껄끄럽거나 중단되지 않고 맑게 흐르는 물줄기가 문맥이라면, 이 물줄기가 반석 위로 굴러 떨어지며 가지가지 변화를 일으켜 하나의 기관奇館을 이루는 것이 곧 문세다.




<수필문학입문> 中...

 

 

 

 

 

출처 : - ☆ 시인의 향기 ☆- http://club.iloveschool.co.kr/po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