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문학입문 6 - 서정
윤오영
수필문학입문 - 서정
정이 글을 낳지 글이 정을 낳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정이 없으면 글이 없다. 서사에 정이 따르지 아니하면 기록에 그치고 설리에 정이 따르지 아니하면 평론이 되고 풍자에 정이 따르지 못하면 고십에 불과하다. 그러나 정으로 글의 내용을 채우면 천속賤俗한 글이 되므로 정은 항상 글 밖에 있어야 한다. 드러나지 않는 정이 귀한 것이니 이른바 침정불로沈情不露, 즉 정에 잠기되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경지요 서정불설抒情不說, 곧 정을 펴되 말로 하지 않는 유로流露다. 물이 없으면 고기는 놀지 못한다. 비늘을 번득이며 유유히 꼬리를 젓고, 펄펄 뛰놀아 물결을 뿜는 것은, 물속에서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기의 몸집이 물은 아니다. 애상적인 미문美文이 품위 있는 서정이 못된다. 서정수필의 어려운 점은 여기 있으며 좋은 예문을 찾기 어려운 까닭이 또한 여기 있다. 몇 가지 문장의 유형을 예문으로 들어 생각해 보자.
(가) 정비석 [들국화] 중에서
시들어 가는 풀밭에 팔베개를 베고 누워서 유리알처럼 파랗게 갠 하늘을 고요히 우러러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까닭없이 서글퍼지면서 눈시울에 눈물이 어리는 것은 가을에만 느낄 수 있는 순수한 감정이다. 섬돌 밑에 밤을 새워가며 안타까이 울어대는 귀뚜라미의 구슬픈 울음 소리며, 불을 끄고 누웠을 때 창문에 고요히 흘러넘치는 푸른 달빛이며, 산들바람이 문풍지를 불릴 때마다 우수수 나뭇잎 떨어지는 서글픈 소리며, 가을빛과 가을 소리치고 어느 하나 서글프고 애닯지 아니한 것이 없다. 가을을 흔히 열매의 계절이니 수확의 계절이니 하지만 가을은 역시 서글프고 애달픈 계절인 것이다.
(나) 김진섭 [백설부白雪賦] 중에서
백설이 경쾌한 윤무輪舞를 가지고 공중에서 편편이 지상에 내려올 때 이 순치馴致할 수 없는 고공무용高空舞踊이 원거리에 뻗친 과감한 분란紛亂은 이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거의 처연한 심사를 가지게까지 하는데, 대체 이 흰 생명들은 이렇게 수많이 모여서 어디로 가려는 것인고? 이는 자유의 도취 속에 부유浮遊함을 말함인가? 혹은 그는 우리의 참여하기 어려운 열락에 탐닉하고 있음을 말함인가? 백설이여! 잠시 묻노니 너는 지상의 누가 유혹했기에 이곳에 내려오는 것이며, 그리고 또 너는 공중에서 무질서의 쾌락을 배운 뒤에 이곳에 와서 무엇을 시작하려는 것이냐? 천국의 아들이요, 경쾌한 족속이요, 바람의 희생자인 백설이여! 너희들은 우리들 사람까지 너희의 혼란 속에 휩쓸어 넣을 작정인 줄은 알 수 없으되, 그리고 또 사실상 그 속에 혹은 기쁘게 혹은 할 수 없이 휠쓸려 들어가는 자도 많이 있으리라마는, 그러나 사람이 과연 그런 혼돈한 와중에 능히 견딜 수 있으리라고 너희는 생각하느냐?
(다) 현진건 [불국사에서] 중에서
그 아른아른한 옷자락 밑으로 알맞게 불룩한 젖가슴 조붓하면서도 밋밋한 허리를 대어 둥그스럼하게 떠오른 허벅다리 토실토실한 종아리가 뚜렷이 드러났다. 그는 살아 움직인다. 그의 몸엔 분명히 맥이 뛰고 피가 흐른다. 지금이라도 선뜻 벽을 떠나 지긋이 감은 눈을 뜨고 방그레 웃을 듯, 고금의 예술을 얼마쯤 더듬어 보았지마는 이 묵묵한 돌부처처럼 나에게 감흥을 주고 법열을 자아낸 일은 드물었다. 나는 마치 일생을 두고 그리고 그리던 임을 만난 것처럼 그 팔뚝을 만지고 손을 쓰다듬고 가슴을 어루만지며, 어린 듯 취한 듯 언제까지나 차마 발갈을 돌릴 수가 없었다.
(라) 안재홍 [목련화 그늘] 중에서
"만호동안수대몽萬戶同眼誰大夢" 이냐고 읊조린 자가 있다. 만호중생萬戶衆生이 모두 꿈속에 잠겼을 때 올연兀然히 홀로 깨어 월성月星이 낭요朗耀하는 고요한 밤에 거닐 때에는, 스스로 초연한 갬개가 있고 또 고독의 비애도 일으키게 된다. 거세擧世가 다 흐린데 내 홀로 깨끗하고, 중인衆人이 다 취했는데 홀로 깨었다고 굴원屈原이 [어부사漁父辭]를 빌어서 스스로 그 고분孤憤한 심사를 부쳣으니 그가 필경 어복魚腹에 장사하고 말은 것은 오로지 이 까닭이다. 고산의 영봉중만靈峯衆蠻의 위에 솟아올라 만상萬象을 눈 아래 굽어봄이 스스로 장엄숭고한 의취意趣가 있겠지만 초연히 독존獨存한 것에는 스스로 또 무한적막한 비애가 있는 것이다. (중략)명경明鏡도 대臺이 아니요 보리菩提도 또한 수樹가 없어서 허허공공虛虛空空하게 오직 적멸의 세계로만 향하는 것이 그 우주 및 인생의 운명이냐? 시드는 꽃, 깊은 산에 밝은 달, 고운 꽃이 서로 비취 광염光艶을 돋우는 곳에 황홀한 감정과 청고淸高한 의상意想은 내 오히려 일률무한一律無限한 생명의 감격이 없을 수 없다.
(마) 이효석 [낙엽을 태우면서] 중에서
나는 그 냄새를 한없이 사랑하면서 즐거운 생활감에 잠겨서는 새삼스럽게 생활의 제목을 진귀한 것으로 머리 속에 띄운다. 음영과 윤택과 색채가 비곤해지고 초록이 전혀 그 자취를 감추어 버린 꿈을 잃은 허전한 뜰 복판에 서서 꿈의 껍질인 낙엽을 태우면서 오로지 생활의 상념에 잠기는 것이다. 가난한 벌거숭이의 뜰은 벌써 꿈을 꾸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탓일까? 화려한 초록의 기억은 참으로 멀리 까마득하게 사라져 버렸다. 벌써 추억에 잠기고 감상에 젖어서는 안된다. 가을이다. 가을은 생활의 계절이다.
글 (가)는 "마음이 까닭없이 서글퍼진다" "눈시울에 눈물이 어린다" "안타까이 울어댄다" " 나무잎 떨어지는 서글픈 소리" "서글프고 애닯은" 이런 말들을 빼내면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글의 구체성이라거나 함축성이란 찾아볼 수 없고 아무 이미지도 떠오르지 않는 값싼 감상적인 애조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다.
글 (나)는 "처연한 심사를 자아낸다" "어디로 가려는 것인고?" "천국의 아들이요 경쾌한 족속이요 바람의 희생자인 백설이여!" 연상 영탄조로 로맨특한 심사를 울부짖어 보았지만 곡진한 정서와 침착한 실감을 주지 못한다.
글 (다)는 미사美辭를 동원해서 영롱한 묘사를 다했지만 미문적인 화장술에 불과하다.
글 (라)는 호방한 기품과 지사적 강개가 문장에 나타나 어느 정도 그 낭만적 정서를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구문장투舊文章套에서 오는 개념적인 서사抒詞와 웅변조와 가까운 폄貶을 면하기 어렵다.
글 (마)는 낭만을 자제해 나가는 데서 풍기는 정서와 밀도 있는 언어와 구사(은유)로 글의 무게와 깊이를 주고 있다. 사색과 감상의 조화는 이 글의 지나친 만연蔓延을 중화시키고 있는데도 효과를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 전체에서 이미지라 할까, 색향色香이라 할까 떠오르는 은근한 정서의 함축이 없다. 그것은 한결같이 서정 그 자체로 문장의 내용을 삼았기 때문이다. 그 자체가 서정이 되면 글 밖에 남는 서정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잘못 되면 학교 작문, 잘되어도 문장의 수준을 넘을 수가 없다. 그보다는 생활기록적인 수필에서 보다 좋은 서정을 볼 수가 있으나, 여기서는 장황하여 문예를 들지 못한다.
위에서 열거한 문예들은 전에 예시한 바 있는 [가람문선서[나 [장미], [가구]보다 수준이 얕은 서정이라 할 수밖에 없다.
슬프다 기쁘다 하기보다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정서가 있다. 이런 것은 상당히 미묘한 감정이다. 이러한 감정은 미묘한 구상과 미묘한 표현이 아니면 구상화할 수 없다. 다음에 김동인金東仁의 [수정 비둘기]를 들어본다.
수정 비둘기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끝없이 무겁게 하는 어떤 가을날이었었다. 때에, 젊은이는 뜻하지 않고 또 돌아보았다. 소녀의 맑은 눈은 감사하다는 듯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태가 지났다. 젊은이의 병은 차차 무거워 갔다. 아무 친척도 없는 이 젊은이는 한 사람의 의사와, 한 사람의 간호부와 한 사람의 노파를 데리고, 이 해안에서 저 해안으로 고치지 못할 병을 행여나 고치어 볼까 하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또 이태가 지났다.
다른 사람 같으면 벌써 저 세상으로 갔을 병이지만 그의 성심의 덕으로 아직까지 끌기는 끌었다. 끌기는 끌었으나 다시 회복할 가망은 없었다. 남쪽 해안, 임시로 지은 그의 요양소에서 그는 고요히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부터 그는 때때로 4년 전 가을, 어떤 작은 도회지에서 본 황혼의 소녀의 눈을 환각으로 보았다. 그는 소녀의 얼굴도 잊었다. 그러나 자기를 쳐다보는 그때의 그 소녀의 두 눈알뿐은 아련히 이 젊은이의 눈에 남아서 젊은이의 마음에 아름다운 추억을 주었다. 몹쓸 꿈에서 깨어나면서, 식은땀에 젖은 괴로운 몸을 침대 위에 돌아누우면서도 그는 뜻하지 않게, "영애!" 하고는 빙그레 웃고 있었다.
어떤 날 황혼, 이 젊은이는 간호부를 불렀다. 그리고 제 침대를 바다로 향한 문 앞으로 하고, 머리를 바다 쪽으로 두게 옮기어 놓아 주기를 청하였다. 간호부는 젊은이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말없이 침대를 그의 지시대로 밀어다 놓았다. 젊은이는 침대에 누운 채로 도로 나가려는 간호부를 불렀다. 그리고 바다를 가리키었다.
"저어기 배가 하나 있지요?"
"어디요?"
"저어기 돛단배.
"네."
"그걸 봐요."
간호부는 그 배를 보았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몰라서 눈을 도로 젊은이에게 돌리었다.
"하안참, 오 분 동안만 봐요."
간호부는 다시 배를 보았다. 배를 바라보는 눈을 젊은이는 누워서 쳐다보았다. 젊고 예쁜 얼굴이었다. 그리나 젊은이는 그 간호부의 눈에서 4년 전 어느 저녁에 본, 그 소녀의 눈에서와 같은 아름다움은 발견치를 못하였다. 젊은이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간호부에게 도로 나가기를 명하였다.
젊은이의 최후가 이르렀다. 황혼의 해안 - 천하가 붉게 물들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 반사광은 젊은이의 누워 잇는 방안까지 새빨갛게 물들여 놓았다.
해안의 물결 소리, 어부들의 뱃소리, 이런 가운데서 젊은이는 고요히 눈을 감았다.
4년 전 어떤 황혼에 본 소녀의 그 눈을 마음으로 보면서 이 젊은이는 고요히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서가 피로되었다. 그 유서에는 4년 전에 XX도 XX고을에 살던, 그때 열두 살 났던 영애라는 처녀를 찾아서, 그 처녀가 그때 어떤 과객이 준 수정으로 만들은 비둘기를 가지고 있거든, 자기의 유산 전부를 주어서 비둘기를 사서, 자기와 같이 묻어 달란 말이 있었다. 그리고 젊은이는 그때의 그 소녀가 아직껏 그 비둘기를 가지고 있을 것을 의심지 않고 믿었던 것이었었다.
이리하여, 그의 주검은 수정 비둘기와 함께 무덤으로 갔다.
이러한 생각을 하며 눈을 감고 누워 있던 나는, 한 번 기지개를 하고 일어났다. 때는 바야흐로 무르익은 봄날, 곳은 모란봉 중턱에 있는 어느 조용한 곳이었엇다. (이하삭제) (김동인)
이 글을 읽어보면, 말곡 깨끗한 애수哀愁라고 할까, 안개같이 아련한 호흡이라고 할까, 미묘한 그의 정서가 손에 쥐어질 듯이 느껴진다. 더욱이 끝에서, 무르익은 봄날, 모란봉 중턱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는 작자의 모습이 뚜렷이 부각되어 있다. 나는 이 글을 과거 우리 나라 수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높은 수법의 서정수필로 손꼽는다. 다만 그가 소설가였고, 때가 아직 초창기였던 만치, 그의 수필문학에 대한 이해와 문학적 식견의 미급未及으로 사족이 장황하게도 본문(예문 전체를 말함)의 거의 3분의 1에 가깝도록 부연되어 잇어서작품 전체를 손상시키고 있다. 여기서 나는 문장을 위해서나 본인을 위해서나, 그 이하는 삭제하지 아니할 수 없다. 더욱이 여기서는 서정수필의 아름다운 예문으로 삼기 위해서. 원문을 찾아서 읽어보면 내 말이 충분히 이해될 것이다(원문은 한국수필문학 전집에 수록되어 있고, [수필문학]지 72년 4월호에도 게재되어 있다). 김성탄이 일찍이 [서상기西廂記]를 산정비각刪定批刻하면서 오래 못 보았던 [서상기]를 이제 다시 본다해도 좋고, 옛날 [서상기]가 아닌 오늘의 새로운 성탄의 [서상기]를 읽는다 해도 좋다고 했다. 전인前人의 글을 아끼고 후인後人을 위해서 주고 싶은 심경은 같은 것이 아닌가. 수필(특히 서정수필)을 단순한 감상문으로 오해하는 이들을 위하여 이 예문을 들어 보인다.
<수필문학입문> 中
절제 (10/15, 19:12) : 고어가 많습니다. 전자사전을 이용하세요. 구식 단어들을 알아두면 근대초기 문학책 보는 데 도움이 많이 됩디다. 저는 주로 야후사전을 이용합니다. 인터넷의 혜택 중의 하나가, 사전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단 것!
출처 : - ☆ 시인의 향기 ☆- http://club.iloveschool.co.kr/po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