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문학입문 3 - 문장과 표현
윤오영
수필문학입문 - 문장과 표현
독서와 습작, 습작과 수련, 소재의 선택과 서두 이 세 항목에서 출발의 기초를, 문맥 ·문세 ·문정의 세 항목에서 행문行文의 정세를, 서정 ·서사 ·설리 ·사경의 네 항목에서 행문의 내용을 설명해 왔다. 이상은 대개 집필 이전에 알아두어야 할 구상에 관계되는 것들이다. 그러면 이제 문장 표현에 대해서 말하기로 하자.
문장의 스타일을 논하는 것이 문체론이요, 문장의 품격을 논하는 것이 문장론이다. 전자는 문장의 구조를 분석하는 평가로서 객관적인 과학적 연구요, 후자는 문장에 대한 주관적인 감상에서 오는 창조적 평론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고전이나 일가의 격을 이룬 예술 문장에 대한 것이다. 아직 문장의 격을 이루지 못한 현행 시문時文에 대해서 형식적으로 이에 부합시키려는 것은 조관손착祖冠孫着의 넌센스라 할 것이다. 더욱이 화려체華麗體니, 강건체剛健體니, 간결체簡潔體 등등으로 문장의 성격을 유별하는 것은 원래 중학생들의 작문을 지도하는 한 방편으로, 그 이해하기 쉽고, 응용하기 쉬운 것을 취한 것이나, 그리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그것의 종합적 운용의 묘리와, 같은 체에 있어서도 각각 성패의 원인과 이유를 밝혀 주지 아니하면, 글의 옥석을 구분 못하는 청맹과니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 피해는 오늘날 성인들의 시문에까지 미쳐 우리 현대문장 발전에 큰 장애를 끼치고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선 부언해 두는 까닭이다.
문장은 간결해야 한다. '문단의장文短意長.' 글은 짧고 뜻은 길어야 함축이 있고 여운이 있다. 함축이 있어야 읽을거리가 있고, 여운이 있어야 읽을 맛이 있다. 글이 짧으면 청신하고, 뜻이 길면 유연하다. 최대절약의 수법으로 최대효과를 거두려는 것이 현대문장의 요체다. 옛날의 문장은 미사여구와 격식에 사로잡혀 자구의 조탁彫琢과 고사의 인용에 시종하여 달의達意 위주의 근대문장이다. 수필문학도 물론 여기서 비롯했다. 중국에서는 김성탄의 낭만자재하고 자유분방한 기문奇文을 그 출발점으로 보아 양계초 등의 일사천리에 기염을 토하는 임리하고 통창한 문장들이 그것이요, 일본에 있어서는 명치대가들의 산문을 비롯해서 구리카와 하쿠손 등의 명쾌하고 청산유수 같은 달문이 그것이요, 우리 나라에 있어서는 박지원의 기문에서 그 싹을 볼 수 있고, 신문학 후에 최남선 편[시문독본時文讀本]에서 볼 수 있는 당대의 그 유창한 문장들과 안재홍 등 언론계 명사들의 통창한 글들이 그것이다. 거기에는 물론 우열이 있고 장단이 있으나 현대문의 신기축을 개척한 문장들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은 다 논객의 문장이요 문학가의 문장이 아니라 족히 일세를 풍미할 수 있으나 후세에 전할 것이 못된다"는 진주의 평어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른바 시문이다. (여기서 김성탄과 박지원은 문학가로서의 일가를 이룬 특별한 예다.) 그러나 현대문장은 이미 그런 문자으이 세계가 아니다. 하물며 문학작품을 지향하려는 수필문장에 있어서랴.
말이 난 김에 잠깐 한 마디 붙여 두거니와 [시문독본]의 문장들은 한문문장에서 겨우 탈피한 문장들이요, 그 후의 시문은 이윤재편 [문예독본]에서 그 문례를 볼 수 있으니 상당한 진전을 본 셈이다. 그 후 한문파에서 온 문장, 재래의 우리 내간체에서 변화된 문장, 구문맥에서 온 문장, 일문체의 문장, 여기서 혼합된 문장들이 차차 제각기 형태를 갖추는 듯했었다. 그 후 일제의 교육정책에서 국어교육이 전폐되고, 한문이나 국어의 소양이 없이 외국어를 배운 사람들, 해방 후의 주견 없는 문장교육들이 우리 언어 문자엥 심한 혼란을 일으키어 비언어적 국어, 비문장적 국문이 극도의 혼선을 이루고 있는 오늘날, 이 국어교육, 국문교육이 문제되어야 할 입장에서 문장을 논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점이 있다. 여기서 수필문학을 말하기 전에 우선 올바른 문장을 쓰는 것부터 무제 삼아야 할 난처한 경우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것은 눈덮어 두고 말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시 말하거니와 글은 깔끔하고 간결해야 한다. 한 자라도 덜 써도 효과가 같으면 덜 쓰는 게 글이다. 독자로 하여금 창조적 음미를 가질 여백을 주어야 한다.
문장은 또 평이해야 한다. '의현사명義玄詞明' 의 속뜻은 깊어도 말은 알기 쉬워야 한다. 아무리 어려운 철학적인 유현한 진리라도 표현되는 말만은 알아듣기 쉽게 전달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내용은 알고보면 별것도 아닌 것을 부질없이 현학적인 말을 늘어놓고나, 괴리한 변칙적인 표현을 하는 것은 이미 올바른 글이 아니다.
또 글은 정밀해야 한다. 특히 서사나 묘사에 있어서 혼미하거나 모호한 표현이어서는 안된다. 구체적인 실감을 주도록 치밀하고 뚜렷한 표현이 요규된다. 알 듯 말 듯 막연하게 그럴사한 표현이나 지리 산만한 데 흐르지 않고 선명하도록 힘쓸 것이다.
그리고 솔직해야 한다. 글에 수식이나 과장이나 변명이 필요없다. 첫째 거짓이 없어야 한다. 심장에서 우러나는 말, 실감에서 일어나는 말, 직감적인 표현, 이것이 가장 귀하다. 이것이 참된 글이다. 그러헥 솔직하게 쓰기가 곤란한 것이라면 그런 것을 글로 쓰려고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글이란 참된 데서 피어나고 만드는 데서 시든다는 것이 그것이다.
간결 ·평이 ·정밀 ·솔직 이 네 가지를 기준으로 우선 글을 쓰고, 남의 글을 심사해 보면 알 수 있다. 이 말이 왜 필요한가, 더 줄이고 더 깍으면 어디가 손해되나, 살펴서, 깎아서 손해가 없으면 깎아야 할 군더더기인 것을 알 것이다. 좀더 쉽게 말하는 법이 있지 않나, 좀더 쉬운 말은 없나, 생각해 봐서 더 쉬울 수 있으면 더 평이한 말로 바꾸는 것이 좋은 표현이요, 먼저 것이 우둔한 표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보다 더 또렷하고 세밀하게 묘사할 수는 없나, 더 특징적인 표현은 없나, 이 말이 꼭 여기에만 해당하는 표현인가 따져 보면, 불충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진정에서 우러난 말인가, 일호의 가식과 모호가 없이 그대로 잇는 대로의 표현인가 살펴보면 글의 진가를 알게 될 것이다. 이 네 가지 각도에서 글을 연마하고 남의 글을 평가해보는 것이 문장의 기초적인 식견이다.
그러나 간결만 하다고 문장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최대절약의 수법으로도 최대효과를 거두어야 한다. 효과를 감쇄시키는 절약은 절약이 아니라 결손이요, 간결이 아니라 건조다. 간결한 속에도 문장의 기복이 있어야 그 변화에서 오는 힘이 잇고, 농담이 있어야 무의미하지 않고 아름다우며, 기경과 해학이 약간 곁들여 문장의 조화 속에 윤기가 흐르면 진실로 성공한 글이다.
평이하되 평범하지 말야야 한다. 평범한 내용을 평범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이것은 평이한 것이 아니라 무의미한 것이다. 무미하면, 그 내용이 정당하고 문장이 청산유수같이 흘러도 강담講談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므로 말이 곡진하고 참신해야 하며, 핵심이 뚜렷하고 함축서잉 풍부해야 한다. 남이 하지 아니한 말, 나만이 찾아낸 말, 나만이 느낀 표현, 그리고 새로운 발견, 새로운 내요잉 담겨 있어야 비로소 성공한 글이다.
정밀하되 체삽하지 말고 생동해야 한다. 문자잉 소창疎暢하되 이미지기 강해야 한다. 솔직하되 담아하고 품위가 있어야 한다. 진솔하고 무사기無邪氣한 것은 귀하지만 저속하고 유치하거나 누陋하고 졸렬한 생활의 노출이나 표현은 솔직이 아니라 파탄이다. 그리고 문장은 어디까지나 성실하고 다감해야 한다. 한 편의 글은 전체가 하나의 조화 속에서 신비한 무드를 이루고 새로운 감격을 던지면서 여운이 있어야 하며, 읽고 나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생명이 있으면 호흡이 있다. 산 문장에는 호흡이 있다. 이 호흡이 문장의 리듬이다. 리듬은 문장의 율동이요 운향韻香이다. 비록 낭독이 아니요 묵독이라 해도 리듬이 없는 글은 사해死骸와 같은 글이다. 과거의 소위 구송체口誦體니 낭동체니 하며 사사조에 가까운 대우법對偶法의 관용예를 진부하다고 버린 까닭에, 산문에 리듬이 있다면 비현대적 비산문적이거나 비지성적인 글이라고 오인하기 쉽다. 문학에서 음향을 무시할 수 없다. 외재율에서 승화된 것이 내재욜이니 정형시와 자유시의 차差요, 시적 내재율이 다시 승화되고 변화되어 은밀하게 물소리와 같이 흐르는 것이 산문의 운향이다. 과거의 낭독체는 인위적인 가송체의 장단이다. 그러나 흐르는 물소리는 천류淺流와 급류急流. 세류細流와 폭류暴流. 장류長流와 은류隱流. 변화가 무궁하여 일률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 그러나 춘하추동 계절의 순환, 보이지 않는 산천의 맥박, 혈액의 순환, 피는 꽃, 지는 잎, 자연의 어느 것 하나 리듬 아닌 것이 없다. 리듬에 어긋나면 오직 거칠 뿐이다. 역리逆理는 미가 아니다. 산문의 운향은 자연스러운 호흡이다. 그러므로 운향이 ㅇ벗는 글은 그릇된 황무한 글이다. 이상에서 말한 것이 문장 표현의 이상이라고 할 것이다.
실제로 글을 써 나가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 탈이 있다. 수식이 많은 것이 탈이요, 남의 말을 빌어 오는 것이 탈이요, 다 아는 것을 혼자 아는 체하는 것이 탈이요, 평범한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 탈이요, 구체성의 결여된 것이 탈이요, 억지로 덮어 버리려는 것이 탈이요, 없는 내용을 말장난으로 메꾸려는 것이 탈이요, 풍자를 즐기는 것이 탈이요, 박학을 자랑하는 것이 탈이요, 위트나 유머에 집착하는 것이 탈이요, 점잖은 척 지사연志士然하려는 것이 탈이요, 시문에 아부하려는 것이 탈이요, 척수양파尺水楊波의 재주가 탈이요, 편기偏嗜의 관용이 탈이요, 무드를 못 살리는 것이 탈이다. 이것은 지금 실제 문장을 놓고 일일이 검토하면서 지적해 본 말이다. 그러나 예문은 귀태라 들추지 않기로 하겠다. 표현에 잇어서 다 같이 유의할 점들이다.
문장에 기복이 잇으면 굽이치는 물결에 은파銀波가 번득이듯이 위트가 있들 수도 있고, 문장에 농담이 있으면 자연스러운 유머가 아롱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일부러 위트나 유머를 지으려고 생각하거나, 말을 엇되게 써서 익살을 부려서는 아니된다. 사실 그릇된 위트나 엇나간 유머같이 천격賤格인 글도 없다. 품위 있고 참되고 자연스러운 데서 모든 것이 살아나는 것이다.
소설에 있어서 '테마', 시에 있어서 '이미지'가 가장 중요하듯이 수필에 있어서는 '무드'가 가장 중요하다. 무드란 글 전편의 해조諧調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고기의 비늘과 같이 한 비늘 한 비늘이 곱게 가지런히 모여서 일편의 무드를 조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말 한 말 다듬어 나가야 된다. 소설 모양으로 이야기를 꾸며 나갈 수도 없고, 시 모양으로 언어의 특수한 조직으로 효과를 내는 법도 없는 수필은 통상적인 언어를 정규적인 방법으로 서술하는 것인 까닭에, 문장의 배포와 행문의 변화에 그 묘를 얻어야 하지만 또한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무드를 조성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란 항상 여러 가지 개념고 속성을 가지고 잇다는 사실이다. 나는 푸른 것을 말하기 위하여 하늘을 예로 들었지만 읽은 이는, 높고 넓은 개념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높고 넓은 속성을 배제해 나가며 글을 진행시켜야 한다. "푸른 하늘, 망망한 바다, 광막한 사막, ....." 이렇게 이어나가면 하늘의 넓은 것이 주개념으로 받아들여질 것이요, "푸른 하늘, 5월의 강낭콩, 누나의 치맛자락" 이렇게 이어나가면 하늘의 푸른 것이 주개념으로 받아들여져서 누나의 치맛자락까지도 빛깔의 설명 없이 청상靑裳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말의 이음새에서 그 주개념이 규정됨으로써 하나의 무드를 조성해 간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수원이 마르면 흐를 물이 없듯이 상想이 고갈되면 표현의 방법을 생각할 여지가 없다. 까닭에 먼저 풍족한 상을 길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꾸 써 봐야 한다. 우물의 물도 자꾸 퍼야 샘이 난다. 자꾸 써 봐야 상이 마르지 않는다. 좀 공소하고 거칠더라도 방분放奔하고 정열적인 호탕한 글, 낭만적인 글을 적어도 30매 이상, 5, 60매 정도로 쓰도록 하는 것이 초보에게는 필요하다 .습자를 할 때, 큰 글씨를 먼저 써서 획의 힘을 얻은 연후에 잔 글씨를 쓰는 것과 같이, 처음에는 거칠더라도 장황한 글에서 힘을 기른 뒤에 깎고 줄여서 단형문短型文으로 들어가야 한다. 처음에는 2, 30매 이내에는 한 편을 거둘 수가 없던 것이 세련되면 6, 70매를 넘지 않는 것이 정상적일 것이다. 그리고 글을 많이 읽어서 상을 기르고, 마음에 드는 글을 골라서, 따라가야 한다. 그런 뒤에 제 묘리妙理가 터득된다. 여기서 비로소 한 편의 부끄럽지 아니한 글을 쓸 수 있다. 항상 남의 말이나 세평에 좌우되지 말고, 문장의 우열과 장단을 살펴서 속문에 물들지 말고, 악문을 배제할 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문장의 식견이다.
<수필문학입문> 中
절제 (11/02, 06:36) : 글벗 문우님들, 수필을 쓸 적에,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납시다. 1인칭에서도 벗어나 봅시다. 실험수필들을 요즘에 쓰고는 있지만, 소개는 못하겠군요. 후에, 후에 소개합지요. 말이 길었습니다. 즐감~ ^^수필이 너무 흔하지요, 수필이란 접근하기 쉬운 장르인 줄 아는 사람들은 이 글들을 좀 봐야합니다. 당연히, 쉽게 쓸 수가 없고, 고심해야 하겠고 공부해야지요. 제 책임이 아니고 본인의 책임입니다. ^^;
출처 : - ☆ 시인의 향기 ☆- http://club.iloveschool.co.kr/po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