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수필은 어떻게 써야 하나 --- 최승범
웹진 포엠월드 에서 옮깁니다.(www.poemworld.co.kr)
2. 수필은 어떻게 써야 하나
최승범
1. 난향(蘭香)과 수필
수필은 먼저 문장이 되어 있어야 한다. 문장은 사전적인 풀이마따나 어떤 몽똥그려진 생각이나 느낌을 글자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한갖 실용문(實用文)과는 다르다. 문맥만 잡혀 있다고 하여 다 수필이랄 수는 없다. 문학의 한 갈래인 이상 문학으로서의 향취를 지녀야 한다.
향취, 곧 향냄새를 설명하기란 어렵다. 맡아서 느끼고 젖을 수는 있지만 장미의 향기, 밤꽃의 향기, 연꽃의 향기 등을 하나하나 들어서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향기란 어디 꽃에만 있는가.
―무취(無臭)
란 말이 있긴 하다. 그러나 사람이 맡지 못하는 냄새에도 민감한 코를 지닌 동물이 있는 것을 보면 사사물물(事事物物)마다엔 냄새가 딸려 있기 마련인 것 같다.
문학으로서의 수필이 지녀야 할 향취를 난꽃의 향기라면 어떨까. 난의 종류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많은 종류의 난향(蘭香)을 모두 식별해서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둘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란(建蘭)·풍란(風蘭)·보세란(報歲蘭) 등 몇 종의 저 향기를 떠올려 보는 것으로 족하다.
양란(養蘭)에서도 대가시셨던 가람(李秉岐)은 저러한 난초의 향기를,
―청렬(淸洌)
―청상(淸爽)
―방렬(芳烈)
―복욱(馥郁)
등 낱말로의 표현이었다. 이러한 향취는 그 향기에 젖는 사람의 정신과 마음을 맑혀 주고 즐겁게 해준다. 수필도 그 글줄을 읽어가는 독자들에게 난향같은 즐거움을 안겨 주어야 한다.
고서도 없고 난도 없이 되잖은 서화(書畵)나 붙여 놓은 방은 비록 화려 광활하더라도 그건 한 요릿집에 불과하다. 두실(斗室)·와옥(蝸屋)이라도 고서 몇 권, 난 두어 분, 그리고 그 사이 술이나 한 병을 두었다면 삼공(三公)을 바꾸지 않을 것 아닌가. 빵은 육체나 기를 따름이지만 난은 정신을 기르지 않는가.#
―이병기의 『풍란(風蘭)』에서
2. 체험과 정관(靜觀)
난을 기르며 벙글은 꽃가지를 즐기자면 그만한 공정이 필요하다. 양란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해마다 좋은 꽃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이 또한 가람의 말씀이지만, 난초 기르기란 바로,
―오도(悟道)
와 같다고 했다. 오도를 하고서야 제대로 재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①물 줄 줄을 알아야 하고 ②햇볕 쪼일 줄을 알아야 하고 ③거름 줄 줄을 알야야 하고 ④추위 막아 줄 줄을 알아야 비로소 난초를 기를 줄 안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적어도 10년 이상 길러보고야 그 미립이 난다는 것이다.
―수필은 서른 대 여섯 중년 고비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다.
고 한 피천득(皮千得)의 명언이 떠오른다. 중국의 임어당(林語堂)도 글을 쓰기 위해선,
―10년 여행과 10년 독서를 앞세우는 것이 이상적일 것 같다는 말을 한 바 있다.
양란에 10년 미립을 이야기한 거나 수필에 인생의 중년 고비를 말하고 여행과 독서를 앞세운 것이나가 다같이 사물에 대한 체험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 된다.
체험은 경험과도 같은 말이다. 직접적인 것 뿐 아니라 간접적인 것도 아울러 체험이라 할 수 있다. 간접적인 체험은 영화·텔레비전·독서 등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독서는 좀더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어떠한 사물의 속에 있는 본질적인 것을 마음의 눈으로 주의깊게 꿰뚫어 보는 일은 정관이다. 하늘의 구름 한점도 건성으로 볼 것이 아니다. 길가의 이름없는 꽃 한 송이도 데면데면 대할 것이 아니다.
수필가는 천하가 다 아는 난봉꾼(a chartered libertine)이다. 무엇이든 못할 것이 없다. 민감한 귀와 눈, 늘 있는 예사로운 일에서도 무한한 암시를 식별할 수 있는 능력, 조용히 명상하는 정신, 이것만 있으면 수필가는 그의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
―A.스미스, 『수필 쓰기에 관하여』
알렉산더 스미스(Alexander Smith)의 말로 수필 쓰는 일에 체험과 정관의 중요성을 들어 말한 것이 된다. 수필가가 되고자 하면, 쓰는 일에 앞서 세상사·인정기미에 체험과 정관을 쌓기 위한 바람둥이가 되어야 할 일이다.
3. 민얼굴과 화장
수필이란 쓴 사람의
―민얼굴(素顔)
과 같다고 한다. 사와노 히사오(澤野久雄)가 그의 수필집 『바의 주스』(酒場の果汁)에서 한 말이다. 그가 이 비유를 추켜든 것은 그의 소설과 수필의 차이점을 말하고자 함에서 였다. 곧 자기가 쓴 소설은 픽션(fiction)으로서 거기에선 꾸밈없는 정직성을 찾아볼 수 없으나, 자기가 쓴 수필은 다르다는 것이다. 스크랩북에서 지난날의 수필을 되읽어보면 거기에선 언제나 그 수필을 쓰던 때의 자신의 민얼굴을 다시 보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민얼굴이란 화장하여 꾸민 얼굴이 아니다. 짙은 화장으로 꾸민 얼굴이란 배우의 얼굴 같아서 그 사람을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다. 민얼굴에 화장이라는 것을 해도 민얼굴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화장이 높은 화장술이라고 한다. 수필에도 이러한 화장술은 필요하다. 그것은 거짓 꾸밈이 없이 자기자신―생각·마음·뜻―을 들어낸 ‘자기표백’(自己表白) ‘심적나상’(心的裸像)이어도 읽는 이들이 친근하게 접하고 즐거워할 수 있게 하는 일에 속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수필을 쓰는 기교의 문제다.
①‘술도 못 먹으면서 무슨 재미로 사시오?’ 하는 말을 가끔 듣는다. ②그렇기도 하다.
③‘술은 입으로 오고/사랑은 눈으로 오나니/그것이 우리가 늙어 죽기 전에/진리라 할 전부이다/나는 입에다 잔을 들고/그대 바라보고 한숨 짓노라.’
④예이츠는 이런 노래를 불렀고, 바이런은 인생의 으뜸가는 것은 만취(滿醉)라고 하였다. ⑤예로부터 지금까지 이백(李白)을 위시하여 술을 사랑하고 예찬하지 않은 영웅·호걸·시인·묵객이 어디 있으리오. ⑥나는 술을 먹지 못하나 술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⑦여름날 철철 넘는 삐루잔을 바라보면 한숨에 들어마시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⑧차라리 종교적 절제라면 나는 그 죄를 쉽사리 범하였을 것이요, 한때 미국에 있던 것과 같은 금주법(禁酒法)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벌금을 각오하고 사랑하는 술을 마셨을 것이다. ⑨그러나 술을 못 먹는 것은 나의 선천적인 체질 때문이다.
―피천득, 『술』의 서두.
이 글에서 작가의 ‘얼굴’은
―⑥술을 먹지 못하나 술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의 글줄에 있다. 이 한 글줄이 바로 작자의 민얼굴이다. 이를 전후한 8개의 글줄은 모두 이 민얼굴을 화장한 것이 된다. 거짓이 없으면서도 효과적으로 독자에게 민얼굴을 보이기 위한 화장이다. 기교다. 예이츠의 시를 인용한 것도 그 기교의 하나라 할 수 있다.
평소 작자와 술의 관계를 잘 아는 독자는 아는 독자대로 글이라는 것의 멋을 느끼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모르는 독자는 모르는 독자대로, 또한 더욱 술에 약한 독자이면 약한 독자대로 서두에 이어 다음 부분의 글줄까지도 호기심을 가지고 읽어나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 읽고 난 다음에는 작자의 술을 대한 ‘민얼굴’에 더욱 친근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수필을 읽는 즐거움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4. 글제와 내용
글제란 한 편 글, 곧 작품의 제목을 말한다. 명제(命題)·표제(標題) 등으로도 일컫는다.
작가에 따라서는 글제를 미리 정해 놓고 작품을 쓰기 시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품을 다 쓴 연후에 글제를 붙이는 사람도 있다.
아내가 아이를 가지면 딸일는지 아들일는지는 아직 모르면서도 두 경우를 다 가정하고 미리부터 이름을 지어보는 것은 한 아비되는 이의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작품에 있어서도 그렇다. 상(想)이 정리되기 전부터 떠오르는 것이 표제요, 또 표제부터 정하는 것이 광막한 상의 세계에 한 윤곽을 긋는 것이 되기도 한다. …나중에 고치기는 할지언정 나는 번번이 표제부터 써놓곤 한다.#
―李泰俊, 「명제(命題)」에서
수필 쓰는 일과 글제를 정하는 일의 선후문제는 작자의 임의에 맡길 일이다. 숫제,
―무제(無題)
를 제목으로 내걸고 발표한 수필도 볼 수 있거니와, 임시로 정한 제목이란 뜻으로,
―가제(假題)
라는 말도 통용되고 있다.
다만 글제는 그 글의 내용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독자의 관심을 이끌 수 있고, 독자가 내용에 대한 상상의 폭을 넓힐 수 있고, 흔히 쓰여온 글제가 아닌 참신함을 안겨 줄 때, 좋은 글제라 할 수 있다.
독자투고란에서 한 편 수필의 줄거리가 될 수 있는 부분만을 옮겨 본다.
①유난히 무덥던 지난 여름의 일이다. ②괜히 짜증을 부리는 아이도 달래고 바람도 쐴 겸 밖으로 나왔다. 마침 집 가까이에 시장이 있는지라, 구경삼아 한가로운 마음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고함치는 소리, 악쓰는 소리가 뒤썩여 들려왔다. ③사건의 발단은 이 노점상에서 일어났다. ④키가 180센티미터쯤 되고 유도선수처럼 생긴 덩치가 큰 청년 셋이 노점상들의 물건을 마구 빼앗아 차에 실어 놓은 뒤, 이를 말리려는 물건주인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⑤이때 어떤 아줌마가 단속반원의 완력에 맞서고 있었다. 배가 부른 정도로 보아 해산일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⑥이 광경을 지켜보자, 단속지휘자인 듯한 남자가 “다 차에 태워” 했고, 단속원들은 노점상들을 마구 잡아 넣고는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⑦눈자위가 갑자기 뜨거워지면서 내 눈에서 눈물이 솟는 것이었다. 그 임산부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⑧놀랜 가슴을 가라앉히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다행히 단속을 피해서 물건을 온전히 가지게 된 어느 야채노점상 아주머니의 안도하는 소리가 들렸다. ⑨그 아주머니가 펼친 보자기에서는 호박잎 몇 묶음, 깻잎과 파 몇 단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한인영, 「시장 구경」
2백자 원고지 8매 정도의 수필이었다. 이를 줄여 본 것이다. 이야기 줄거리는 제대로 살린 것이 된다.
이러한 줄거리의 내용이라면 글제를,
―시장 구경
이라고 하는 것 보다도,
―노점거리에서
로 하는 것이 더 걸맞지 않을까.
피천득은
―글제를 보고 독자가 내용을 파악해 버리는 뻔한 이야기는 수필로서의 가치를 잃게 된다.
고 했다. 사실 한 편 수필에서 그 몇 줄을 읽지도 않았는데 내용을 뻔하게 알 수 있도록 붙여놓은 글제는 싱거운 것이 되기 쉽다.
이런 경우 상징적인 글제를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독자가 읽고 나서 되려 내용과 동떨어진 허(虛)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도 금물이다.
글제는 어디까지나 내용을 대표·암시할 수 있는 것으로
―수수하면서도 실(實)하고 멋스러운가.
―무게 있으면서도 꾀까닭스럽지 않은가.
―경쾌하면서도 허하거나 겉날리지 않은가.
―화려하면서도 야하지 않은가.
―속(俗)되지 않은가.
등등을 생각하여 붙일 일이다.◑ (수필가, 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