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구 시작법 연재 14
박석구 시작법 연재14
'자, 떠납시다, 시의 여행을'' |
2001-07-11 제14강
* 나의 얼굴은
<대상인식>
직장 선배 되시는 여자 분이 '당신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 보면 눈은 눈대로, 코는 코대로, 입은 입대로, 귀는 귀대로 구먹새가 다 예쁜데…….'라는 꼬리 없는 말을 던지고 웃었습니다.
당신은 의문에 쌓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여자 분의 말을 되씹어 보면, 그분이 숨겨놓은 꼬리말이 긍정어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당신은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봤습니다. 깡마른 얼굴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습니다. 얼굴을 여자 분의 말씀대로 하나하나 뜯어봤습니다. 그래서 얻은 답은 그분이 숨겨놓은 꼬리말이 '당신의 얼굴은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결국에 그분의 맘에 들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사실, 당신도 어릴 때부터 어처구니없이 마른 당신의 얼굴이 싫었습니다. 버릴 수 있다면 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버릴 수가 없는 것이 얼굴. 이 버릴 수 없는 당신의 얼굴이 우리 나라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아름답다는 우리 나라. 그런데 하나가 되지 못하고 남북이 나누어지고 동서가 갈려 당신을 슬프게 하는 우리 나라. 그러나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는 우리 나라와 같다는 생각 말입니다.
당신의 직장 선배 되시는 여자 분이 무심코 던진 말이 실마리가 되어 인식한 내용입니다. 당신은 그분에게 지금도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당신에게 한 편의 시를 선물해 주었으니까.
시의 소재는 이처럼 일상 생활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주위 사람들이 무심코 던지는 말이나 당신이 겪은 일, 우연히 목격한 사건이 시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인식내용 정리>
인식한 내용 중, 필요한 것만 골라 정리해 봅시다.
① 나의 얼굴은 하나하나 뜯어보면 구먹새가 다 예쁘다.
② 그런데 전체를 모아 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③ 그래서 나는 나의 얼굴을 버리고만 싶다.
④ 그러나 나는 나의 얼굴을 버릴 수가 없다.
⑤ 그것은 흩어지기만 하는 우리 나라와 같다.
당신이 겪은 일을 고백하는 형식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구성>
①과 ②를 1연, ③과 ④와 ⑤를 2연으로 구성해 봅시다. 내용에 의해 연이 나눠졌지요.
하나하나 뜯어보면 구먹새가 예쁘다는 나의 얼굴은
전체를 모아 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버리고만 싶은 나의 얼굴은
그러나 버릴 수 없는 나의 얼굴은
우리 나라와 같다.
간단하지요? 간단한 것도 다듬으면 멋진 시가 될 수 있습니다. 시는 길어야 한다는 선입견에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 속의 평범한 이야기를 시로 옮길 수 있습니다.
<형상화, 퇴고>
시적 자아는 '나'입니다. 당신의 마음을 고백적 독백적 진술이 되겠지요?
1연
하나하나 뜯어보면 구먹새가 예쁘다는 나의 얼굴은
전체를 모아 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
1행이 너무 길지요? 행을 나누어 정리해 봅시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구먹새가 예쁘다는
나의 얼굴은
2행의 '전체를 모아 보면'을 구체화하여 봅시다. 얼굴 전체를 모아 보는 방법은 어떤 방법일까요? 거울 속에 모아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그럼, 거울 앞에 서 보십시오. 이젠 당신의 얼굴이 거울 속에 모아졌습니다. 정리해 봅시다.
거울 속에 모아 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음은 2행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를 구체화하면 어떻게 될까요? '마음'은 추상적인 말이지요? 구체적인 말과 결합시키는 방법도 있습니다. '마음(추상어)+밖(구체어)=마음 밖'과 같은 식입니다.
'들지 않는다'도 '마음 밖'과 어울리는 말로 바꿔야겠지요? 보다 생동감이 있는 말 '떠돈다'로 바꾸면 어떨까요?
거울 속에 모아 보면
마음 밖에 떠돈다.
1연 전체를 모아 봅시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구먹새가 예쁘다는
나의 얼굴은
거울 속에 모아 보면
마음 밖에 떠돈다.
이젠 2연을 다듬어 봅시다.
그래서 버리고만 싶은 나의 얼굴은
그러나 버릴 수 없는 나의 얼굴은
우리 나라와 같다.
1행, 2행의 시어를 1연과 균형이 맞게 행을 나누어야겠지요?
그래서 버리고만 싶은
나의 얼굴은
그러나 버릴 수 없는
나의 얼굴은
우리 나라와 같다.
3행의 '우리 나라와 같다.'를 형상화하여 봅시다. 당신의 나라를 당신은 무어라고 합니까? 조국이라고 하지요. 그럼, 조국을 생각하면 당신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슬프지요? 그렇다면, '우리 나라'는 당신에게 어떤 조국입니까? '슬픈 조국'이지요?
전체의 주어는 '나의 얼굴은'입니다. '슬픈 조국'이 서술어가 되어야겠지요? 정리하면 '나의 얼굴은 슬픈 조국과 같다.'로 바꿀 수가 있겠지요? 바꾸어 봅시다.
그래서 버리고만 싶은
나의 얼굴은
그러나 버릴 수 없는
나의 얼굴은
슬픈 조국과 같다.
5행이 문맥에 잘 어우러지지 않는 것 같지요? 서술부를 '슬픈 조국이었다'로 바꾸면 어떨까요? 정리해 봅시다.
그래서 버리고만 싶은
나의 얼굴은
그러나 버릴 수 없는
나의 얼굴은
슬픈 조국이었다.
그래도 이상하지요? 5행에 시어 하나가 빠진 것 같지요? 어떤 시어가 빠졌을까요? 잘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은 '나의 얼굴은 ( )에게 슬픈 조국이었다.' 형식으로 바꾸어야 어울립니다. 서정적 자아는 '나'입니다. 누구에게나 슬픈 조국일까요? 시적 자아인 '나에게'만 그렇겠죠? 그렇다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나의 얼굴은 나에겐 슬픈 조국이었다.
2연을 모아 봅시다.
그래서 버리고만 싶은
나의 얼굴은
그러나 버릴 수 없는
나의 얼굴은
나에겐 슬픈 조국이었다.
전체를 하나로 모아 보면
하나하나 뜯어보면
구먹새가 예쁘다는
나의 얼굴은
거울 속에 모아 보면
언제나 마음 밖에 떠돈다.
그래서 버리고만 싶은
나의 얼굴은
그러나 버릴 수 없는
나의 얼굴은
나에겐 슬픈 조국이었다.
나름대로 멋진 시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당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빗대어 보기와 상상하기에 의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