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실

박석구 시작법 연재 5

백연심 2006. 11. 18. 21:43

박석구 시작법 연재5
 

'자, 떠납시다, 시의 여행을''

2001-06-28  제5강


* 허수아비. 2
 허수아비가 땀을 흘리며 들판을 지키고 있습니다.

 안타깝지요? 왜, 그럴까요? 

당신은 허수아비의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데, 허수아비만 모르는 비밀 말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안다면, 어디 한 번, 아무도 모르게 허수아비에게 슬며시 알려 줘 보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그걸 알면 당신은 배반자가 되니까.
 비밀이 무엇일까요? 모르겠습니까? 그렇다면 생각해 봅시다.

 지금, 허수아비는 들판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땀을 뻘뻘 흘리며 익어 가는 벼를 지키고 있지요? 그 벼는 누구 것입니까? 허수아비 것입니까, 아닙니까? 이제 비밀을 알았지요? 그럼, 허수아비에게 비밀을 털어놓아 보십시오.

 허수아비야, 네가 땀을 뻘뻘 흘리며 지키는 것들은 네 것이 아니란다.

 다듬어서 행을 구분하면 시가 됩니다.
 
 허수아비야,
 네가 땀을 흘리며
 지키는 것은
 네 것이 아니란다.
 
 허수아비가 지키는 것은 누구의 것일까요? 되새겨 보면 답이 나옵니다. 그러나 말해서는 안됩니다.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놈들에게 몰매를 맞을 테니까. 표현기교는 의인법, 돈호법, 표현 방법은 당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낸 해석적 진술입니다.
 
* 술꾼
 술꾼들이 오리 고기를 먹고 있습니다.
 
 저 사람들이 술에 취하면 어떤 소리를 낼까요?

 대답해 보십시오, 오리 소리를 흉내내면서. 대답이 생각났으면, 당신이 본 상황과 대답을 결합하여 정리해 봅시다.    

 오리고기를 먹으며 술을 마시는 저 사람들, 술에 취하면 틀림없이 오리처럼 꽥꽥거릴 것이다.

 다듬어서 행을 구분하여 봅시다.

 오리 고기를 먹는
 저 사람들
 술에 취하면
 꽥꽥거릴 거야.

 * 먹는 대로 된다는 말이 생각나지요? 당신은 어떤 고기를 좋아합니까? 토끼고기, 돼지고기, 여우고기, 뱀고기, 천하를 호령하는 호랑이고기 중, 무엇을 좋아합니까? 아니, 우리는 어떤 고기를 먹고, 어떤 소리를 내며 살아야 뒤탈이 없을까요?
 표현기교는 의성법, 표현방법은 당신의 판단을 드러낸 해석적 진술. 의성법은 소리를 흉내내는 비유법입니다.

*빈집
 모두 떠난 빈집입니다. 버리고 간 것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장독대에 가보니 깨진 장독에 빗물이 고여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 빗물 속에 하늘이 들어와 있습니다. 왠지, 모르게 서글퍼집니다.

 필요한 것만 선택하여 정리해 봅시다. 이것이 소재 선택. 소재 선택은 당신의 권리. 당신 뜻대로 골라 정리해 보십시오.
  
 깨진 장 독 속에 하늘을 담아 놓고 모두 떠나갔구나.

 다듬어 봅시다.

 모두 떠나갔구나
 깨진 장독 속에
 하늘을 담아 놓고.
 
 무엇인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지요? 이것이 돌아올 기약 없이 떠나버린 우리들의 고향 모습입니다. 표현기교는 영탄법과 도치법. 표현방법은 1행은 해석적 진술, 2, 3행은 서경적 묘사입니다.
 
* 눈. 1
 눈이 펑펑 내리고 있습니다. 산 속으로 낯모르는 사람 하나가 걸어가고 있습니다.

 산 속에 발자국이 남을까요? 남지 않을까요?

 모르겠으면, 당신이 직접 걸어 보고 정리해 봅시다.  

 눈이 내리는 산 속을 낯모르는 사람 하나가 걸어가고 있는데 발자국이 남지 않는다.

 다듬어 봅시다.

 눈 내리는 산 속
 낯모르는 사람 하나
 발자국 없이 걸어간다.
 
 표현방법은 서사적 묘사, 사건이나 현상을 시간의 연속을 통해 그려내는 묘사입니다.

 한 번 소리내어 읊어 봅시다. 시는 소리 내어 읊어 봐야 가슴이 울립니다. 다시 한 번, 눈을 감고 읊어 봅시다. 그러면 그 속에서 다른 뜻이 울어 나옵니다. 이것이 시의 함축성. '발자국' 속에 숨겨진 의미는 무엇일까요? 말을 바꾸면, '발자국'의 상징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삶의 흔적'을 나타낸다고 해도 되겠지요?

* 흔적 없이 살아가는 '낯모르는 사람'은 당신의 마음 속에 살고 있는 신선이나 도인이겠지요?
 
* 개불알풀꽃
 마음이 편치 않아 혼자 길을 걷고 있는데, 개불알풀꽃이 발에 밟혔습니다. 개불알풀꽃이 투덜대는 소리가 들려오지요?

 뭐라고 투덜댑니까?

 당신의 가슴속에 핀 개불알풀꽃이 뭐라고 투덜댑니까? 다시 한 번 들어보십시오. 들려 오지요?

 어떻습니까, 꽃에게 욕을 얻어먹은 기분이?

 그 기분을 개불알풀꽃에게 그대로 털어놓아 보십시오.   
 
 개불알풀꽃아, 미안하다. 그렇지만 지금은 네가 아니라 내가 마음이 편치 않단다.

 조금만 다듬으면 시가 됩니다. 어차피 시는 말장난, 맛있고 멋지게 고쳐 봅시다, 사과처럼. '내가 마음이 편치 않다'를 '내가 개불알이란다.'로 바꾸면 멋지겠지요?
 
 개불알풀꽃아,
 지금은 네가 아니라
 내가 개불알이란다.

 그러면 개불알꽃이 웃겠지요? 표현기교는 돈호법, 의인법. 표현방법은 당신의 심정을 털어놓은 독백적 진술입니다. '개불알'이 동어반복이지요? 이때는 동어를 사용함으로써 얻는 유희적 효과입니다.
    
* 장난감 총
 동네 꼬마아이가 장난감 총을 가지고 놀고 있습니다. 아무 곳에나 총을 마구 쏘아 댑니다. 당신은 벌써 그 총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어떻습니까? 꼬마아이가 곧 세계를 정복할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 꼬마아이가 부럽지요.

 그럼, 어린이가 되어 보십시오. 아이의 총을 빌려 당신의 마음대로 총을 쏘아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온 세상을 당신의 손 안에 넣을 수가 있습니다.
 인식된 내용을 정리해 봅시다. 정리할 때는 하나의 이야기나 한 폭의 그림, 한 바탕의 생각을 순서에 맞게 엮어 보자고 했습니다.

 동네 꼬마아이놈은 장난감 총 하나만 가지면 온 세계를 정복할 것같이 설쳐댑니다. 나는 그놈이 부럽습니다.

 약간의 변화를 주어 꼬마아이놈에게 당신의 심정을 털어놓는 형식으로 바꿔 보십시오. 이것이 당신의 심정을 고백하는 독백적 진술.
 
 장난감 총 하나면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너,
 나는 정말 네가 부럽다.

 * 이제 당신은 세계를 정복하는 방법을 알았습니다. 가슴 속에 쌓인 것이 있을 때는 아이의 총을 빌리십시오. 사면 절대 안됩니다. 반드시 빌려야 됩니다. 그래야 아이들의 가슴을 빌릴 수 있을 테니까. 어차피 삶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닙니까? 아이들은 아이들의 장난감, 어른들은 어른들의 장난감으로 세상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것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