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실

[시 수정 강좌] 14. 구체적인 사물과의 연결 -박제천

백연심 2006. 11. 18. 21:37

출처:http://www.poemworld.co.kr/포엠월드 창작실기강좌

 

[시 수정 강좌] 14. 구체적인 사물과의 연결 ---박제천

 

14. 구체적인 사물과의 연결   -박제천

쫇 대상 작품




1* 열 개의 손가락에 열두 캐럿의 다이아몬드로 꾸민 너.
2* 비단옷을 걸친 너를 무심코 지나쳤다.

1* 네 눈의 고요를 보고 다가갔다.
2* 네 입가의 미소를 보고 가까이 갔다.
3* 네 조용한 심장의 박동을 듣고 안도했다.
4* 네 무채색의 표정을 보고 평화를 읽었다.
5* 네 흔들리지 않는 뒷 모습을 보고 신뢰를 배웠다.

1* 네 눈과 입을 깃점으로 한 개의 작은 무지개가 걸렸다.
2* 따뜻한 가슴과 평화스런 얼굴 위에 또 한개의 무지개가 걸렸다.
3* 무지개는 시선이 닿는 곳마다 걸렸다.
4* 행복이었다.
5* 평화였다.
6* 온갖 것이었다.
7* 투명해서 금방 별이 쏟아질 것같은 너의 눈
8* 네 눈 속에 가득한 그리움을 보고
9* 나도 너를 닮았음을 알았다.
10*네 긴 그림자를 밟고 선 나의 시야는 흐려져 왔다.


쫊 평설


이 시는 시적인 형태, 다시 말하자면 시적인 어조나 비유법의 구사는 일정 단계에 올랐으나 완성도가 뒤떨어진다. 그 이유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작자는 열정적으로 ‘너’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지만, ‘너’라는 대상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제목조차 ‘너’라고만 했으니 더더욱 미궁에 빠질 뿐이다.

시는 여러 가지 상징을 띠는 다의성(多義性)을 지니고 있을수록 좋은 작품이 된다. 그러나 그 다의성은 정확한 이중구조에서 발휘된다. 일차적인 의미 전달에 실패하고서는 이중구조가 성공할 수는 없다.

상징은 뜬 구름 잡듯이 애매모호한 것이 아니다. 그 의미가 확실하게 독자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주인공이 누군지 알 수 없는 생일잔치에 초대받았다면 즐겁기는커녕 꺼림직하기만 할 것이다. 여기서는 ‘너’에 대한 상징이 감추어져 있다. 내용의 전개에서도 아무런 힌트도 얻을 수 없으므로, 제목을 구체적인 것으로 바꾸든지 내용을 다시 써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경우 시인들은 구체적인 사물인 오브제를 가져온다. 오브제라는 주인공을 앞세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오브제의 이야기(사실 시인이 하고자 하는 말)를 독자들이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여 받아들이게 되는 다의성이 생기게 된다.

그외의 다른 문제점들을 살펴보자. 1연의 내용은 다른 연과 연결지어 볼 때 이치에 맞지 않는다. 뒤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너’는 매우 고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가치를 물리적으로 직접 표현하면 격을 떨어뜨린다. 손가락마다 다이아몬드를 끼고 비단옷을 걸친 너에게서 어떻게 고요와 평화, 안도와 신뢰를 느낄 수 있겠는가. 1연의 내용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그럴 만한 내용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1연을 삭제하든지, 아니면 뒤의 내용을 수정하든지 해야 할 것이다.

2연의 4행 ‘무채색의 표정’은 어떤 표정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다른 행에서 쓰인 ‘입가의 미소’ ‘조용한 심장의 박동’ ‘흔들리지 않는 뒷모습’ 등 구체적인 표현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작자 혼자만이 알 수 있는 추상적인 표현은 독자의 시 읽기를 방해함을 유의해야 한다. 3연 6행의 ‘온갖 것이었다’ 역시 마찬가지이다.
3연의 ‘깃점으로’(기점이 표준어) ‘한 개’는 서툰 시어이다. 언어에 대한 감각을 더욱 길러야 할 것이다.


마지막 연은 마무리로써 부적당하다. 2연과 3연의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내용이 ‘그리움’ ‘그림자’ 등 어둡고 부정적인 분위기로 전환하고 있다. 마지막 연은 앞의 내용을 더욱 강조하고 뒷받침하는 내용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마침표를 찍는 것은 무방하나, 시의 호흡을 끊어놓는 단점이 있다. 그렇다 해서 마침표를 전혀 쓰지 않는 것 역시 문제의 하나이다. 시에서는 부호 역시 낱말에 못지않은 기능을 지니고 있다. 시의 흐름에 자연적인 리듬을 주면서, 부호의 적절한 활용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이 시의 ‘너’는 필자의 시각에서 ‘노송(老松)이라는 오브제가 적합한 것 같아, 그것을 제목으로 삼았다. ‘노송’이라는 구체적인 사물과 연결됨으로써 어떻게 ‘너’가 실체화되는지, 구체적인 이미지가 어떻게 떠오르는지, 미세하게 바뀐 부분을 눈여겨 보아주기 바란다. 그리고 그것이 어떠한 상징성을 띠며 이중구조가 획득되어 가는지 살펴보자.


쫈 수정


노송(老松)


네 눈의 고요를 보고 다가갔다
네 입가의 미소를 보고 가까이 갔다
조용한 네 심장의 박동을 들으며 안도했다
흔들리지 않는 네 뒷모습을 보고 신뢰를 배웠다
네 눈과 입에서 작은 무지개를 보았다
따뜻한 가슴과 평화스런 얼굴 위로 또 하나의 무지개를 보았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걸려 있는 무지개는
행복이었다, 평화였다

네 긴 그림자를 밟으며 너를 닮아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