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실

[시 수정 강좌] 3. 어미 처리와 애매 모호한 표현 -박제천

백연심 2006. 11. 18. 21:26

출처:http://www.poemworld.co.kr/포엠월드 창작실기강좌

 

[시 수정 강좌] 3. 어미 처리와 애매 모호한 표현 ---박제천

 

3. 어미 처리와 애매 모호한 표현  -박제천

쫇 대상 작품


봄 풍경화를 보다가

1* 복사꽃이 일제히 쏟아지고
2* 푸른 잎들은 날개를 퍼득대며 날고
3* 동시에
4* 백지에 그려 보아라
5* 찰랑대는 초록 바람의 설레임과
6* 가슴 위에 앉았다 가는 싱그러운 말들을
7* 한꺼번에 그려 보아라
8* 그 위에
9* 빙글빙글 돌다가 부서지며
10*일제히 눈을 뜨는 봄햇살의 입김을
11*가만히 포개보아라

1* 나는 얼마나 가질 수 있을까
2* 손으로 잡은
3* 이 귀중한 시간 앞에서
4* 제 정신이 들면 부끄러운 것들보다
5* 먼저 걸어가
6* 공으로 차지할 수 있는
7* 이 웃음들을
8* 얼마나 만날 수 있을까

1* 스산한 가슴보다
2* 빨리 가는 눈빛을 쫓아
3* 봄 풍경화 속에 맑은 눈동자를
4* 삼키고 싶다

쫊 평설

시에 있어서 한 행을 마무리짓는 어미 처리는 시어를 선택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아무리 잘 다듬어진 시라고 해도 어미 처리가 미숙하면, 리듬감을 살리지 못할 뿐더러 시의 흐름을 방해한다. 이것은 사용하는 어미에 따라 어법이나 시의 분위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는 구미의 시나 한시와는 달리 각운이나 두운이 없다. 시조에서와 같이 3·4조니 7·5조니 하여 형식적으로 운율을 정해 놓은 것도 있지만, 현대 자유시는 내재율로서 운율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시인이 가지고 있는 정서적인 긴장감이나 호흡이 운율로 나타나거나, 어미 처리로써 형식적인 운율을 맞추어 갈 수밖에 없다.
어미는 시의 전반적인 내용이나 흐름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예를 들어 과거형·현재형·미래형을 쓸 것인가, 감탄적이거나 명령적인 어미를 쓸 것인가 등을 적절하게 선택하여야 한다. 어미를 잘못 선택할 경우 전달하고자 하는 뜻이 달라질 수도 있고, 어미를 잘 선택함으로써 더 좋은 효과를 보는 수도 있을 것이다.

위의 시는 봄의 싱그러움과 화사함을 그려보고자 했으나, 어미를 잘못 씀으로써 그러한 기분을 반감시키고 있다. ‘~해 보아라’는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할 것을 명령하는 어미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느낀 바를 다른 사람들이 함께 느껴주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의 어미는 자기 자신에게 내리는 명령이나 권유형 어미로 바뀌어져야 할 것이다.

시에서 명령적인 어미를 꼭 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민중시나 노동시 등에서는 이러한 어미를 사용하여 효과를 보는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강압적인 어미로써 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가기 어려우므로 특별한 경우가 아닌 다음에는 쓰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위의 시는 유연하게 읽히기에는 애매 모호한 부분이 많다. 특히 2연의 시작부터는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제 논리를 갖추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미숙한 어휘 선택으로 행과 행의 연결 고리가 없이 끊어진 채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특히 ‘손으로 잡은 귀중한 시간 앞에’나 ‘먼저 걸어가 공으로 잡을 수 있는’ ‘스산한 가슴보다 빨리 가는 눈빛을 쫓아’(쫓아는 좇아가 바른 맞춤법이다)는 그 뜻이 불분명하고 격이 떨어지는 표현들이다.

시는 언어와 언어가 서로 만나 새로운 이미지와 뜻을 조화롭게 창출해 내는 것이다. 그것이 서로 충돌하여 새로운 의미는커녕 앞서의 좋은 이미지까지 흐트려 놓을 수도 있으며, 독자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암호문과 같이 되는 수도 있다. 언어와 언어를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로 증폭시키고자 할 때는, 앞뒤 행과 그 뜻이 서로 연결되는 것인지, 또 분명하게 전달되는 것인지를 다시 한번 살펴보아야 한다.

시를 다듬는다는 것은 지은이 자신이 독자가 되어 객관적으로 자기 작품을 되짚어보는 것이다. 시는 가슴에서 쏟아져나올 때 한 번 써서 그대로 작품이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다시 읽어보면 표현이 거칠거나 호흡에 거슬리는 곳이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시는 한 번 써서 내팽겨치듯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언어를 선택했는지, 알맞은 표현을 했는지, 호흡이 거슬리는 곳은 없는지, 몇 번이고 읽어보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습작기에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좋은 시를 쓰겠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뿐이다.
위의 시는 어미를 새로이 바꾸고 불분명하게 전달되는 행들을 삭제해 보았다. 그리고 좀더 이해하기 쉽도록 몇 행을 새로이 바꾸고 추가시켜 보았다.

쫈 수정

봄 풍경화를 보다가

복사꽃이 일제히 쏟아지고
푸른 잎들이 날개를 퍼득대며
날아오르는 모습을
백지에 그려 보리라
초록 바람의 설레임과
가슴 위에 앉았다 가는 싱그러운 말들을
한꺼번에 그려 보리라
그 위에 빙글빙글 돌다가 부서지며
일제히 눈을 뜨는 봄햇살의 입김을
가만히 포개 보리라

이 웃음들 앞에서
부끄러움보다 먼저 달려가는
나의 눈빛,
그림 속 저 많은 눈빛이
나를 지켜보는
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