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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나의 어머니 / 김남조
백연심
2006. 9. 13. 03:56

나의 어머니 / 김 남조
어렸을 때 어느 날, 나는 하학길 노상에서 말에 물린 적이 있었다. 옷 위로 팔을 물려 놀라긴 했으나 상처는 대단치 않았다고 기억한다. 대문을 들어서면서 어머니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대청 마루를 버선발로 뛰어 내리시던 모습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너무나도 놀라시던 표정이 어이없어서 우습기조차 했던 일이 몇십 년의 세월에 이르러서야 더욱 수긍이 가고 깊이 되살아난다.
대학엘 다니면서 나는 어설픈 글조박지들을 주무르게 되었고 어떤 건 활자로 찍혀 나오기도 했는데 이때 누구보다도 내글을 기뻐하고 아껴 준 분, 대표적인 애독자가 역시 어머니셨다. 당시의 나는 어머니를 모신 단 두 식구였고 따라서 처음 만든 글은 맨 먼저 어머니께 보여드리는 일이 나로서도 귀한 보람이었다.
내가 글을 쓸 땐 어머니도 함께 깨어 계시므로 어떤 때는 더 쓰고 싶은 걸 어머니 때문에 불을 꺼버리고 머리 속으로만 글귀를 뒤척이는 일이 자주 있었다.
결혼 후도 줄곧 한집에 모시면서 차례로 태어나는 아이들로 하여 어머니의 손에 과중한 부담이 끊이지 못했던 송구함 들을 더 말해 무엇하랴.
밤중에라도 어린애 울음소리가 나면 감전처럼이나 빨리 어머니가 깨어나신다. 내 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무섭게 조바심하시던 일들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연이어 애들을 길러 주시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을 때는 바로 나 자신이 죽은 듯한 느낌이었다. 모성의 위대함은 누구나가 잘 아는 터이지만 나의 경우는 훨씬 그 이상이요, 절대의 상한선이다.
어머니는 유언을 남기셨다. 한 젊은 신부에게 당부하여 그 신부가 죽는 날까지 날마다 기도 중에 당신의 딸을 위해 몇 가지의 축원을 보태어 줄 약속을 받으셨다.
장례식 얼마 후에 안 일이지만 어머니는 짧게 다듬은 기도 구절을 아예 만들어서 내주셨으며 수중에 있던 돈의 전액을 미사 예물로 바치셨다. 천주 교회의 한 사제와 죽은 이와의 서약은 영원히 신성할 수밖에 없고 오늘에 이르도록 어김없이 지켜져 오고 있으며 이 일은 더할 수 없는 숙연감을 언제나 일깨워 준다. 이토록 끈적거리는 점성의 어머니의 피를 나의 심신에 칠범벅이로 입혀 칠하고 나는 살아간다
어머니의 병은 췌장암이었으나 의사들의 진단이 미급하여 오래도록 그 고통이 이해되지 못했으며 따라서 치료도 엉망이고 말았다. 여러 곳의 병원을 거친 다음에야 병 이름을 짚어냈으나 이미 절망밖엔 남은 게 없었다. 혈압은 계랑기에 잡혀지지도 않게 떨어지고 너무나도 참담한 고통중에 어쩌다 잠시 의식이 돌아오면 '우리 딸을 좀 재워 달라."는 그 말씀만을 되풀이 하셨다.
예수 고상<십자가 칠언>을 언제나 손에 잡고 계셨는데 손이 허탈하여 떨어뜨리는 일이 생기므로 위독하던 몇 주간은 붕대로 손과 고상을 묶어 드렸었다.
1967년 6월 20일, 시계가 정확히 정오를 짚을 때 어머니는 숨을 거두셨고 그 후 내 몸속에서 나와 함께 숨쉬며 살아가고 계신다. 내 삶의 모든 불태움과 봉헌들은 내 어머니와 나와의 두 사람 몫인 것을 나의 하나님만은 알고 계신다.
<세월의 향기, 도서출판 솔과 학, 2003년 7월>
**** 작가소개****
대구 출생, 서울대 사대 졸업
예술원 회원, 숙명여대 명예 교수
저서로는 시집 '목숨' '나무와 바람' '사랑초서' '바람 세례' 등 다수
수필집 '여럿이서 혼자서' '사랑후에 남은 사랑' 등 다수
*은하수님 편집
출처 : 시의 향기로 여는 마당
글쓴이 : 김영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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