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이 있는 시

[스크랩] 바람의 집 - 겨울 판화版畵.1 / 기형도

백연심 2008. 1. 28. 15:01
바람의 집 - 겨울 판화版畵.1 / 기형도(1960~1989)


내 유년 시절 바람이 문풍지를 더듬던 동지의 밤이면
어머니는 내 머리를 당신 무릎에 뉘고 무딘 칼끝으로
시퍼런 무우를 깎아주시곤 하였다.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소리. 어머니조차 무서워요. 얘야, 그것은 네 속에
서 울리는 소리란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
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한다. 자정 지나 앞마당
에 은빛 금속처럼 서리가 깔릴 때까지 어머니는 마른
손으로 종잇장 같은 내 배를 자꾸만 쓸어내렸다. 처마
밑 시래기 한 줌 부스러짐으로 천천히 등을 돌리던 바
람의 한 숨. 사위어 가는 호롱불 주위로 방안 가득 폴
폴 수십 장 입김이 날리던 밤, 그 작은 소년과 어머니
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해설]
일종의 자족적이고 완결된 우주로서 한 인간의 탄생과
성장, 죽음이라는 드라마가 펼쳐지는 집은 비호성(庇
護性, protection)에 그 생명이 있다. 잡안의 행복과
내밀성, 휴식을 방해하는 겨울의 추위와 같은 난폭한
외부의 침입자로부터 가족의 평화와 안위를 지켜주는
내 집.
앓아누운 유년의 보호받지 못한 삶 속에서도 집은 그
중심성과 휴식성을 결코 잃지 않는다. 그 내부에 마른
손으로 연신 성장의 진통과 시련을 앓는 '나'의 배를
연신 쓸어내리는 어머니라는 수호천사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시인 임동확

*광주일보 17059호
출처 : 시의 향기로 여는 마당
글쓴이 : 김영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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