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이 있는 시
[스크랩] 흙 속에 있는 풍경 / 나희덕
백연심
2008. 1. 28. 14:55
흙 속의 풍경 나희덕 미안합니다 무릉계에 가고 말았습니다 무릉 속의 폐허를, 사라진 이파리들을 보고 말았습니다 아주 오래 전 일이지요 흙을 마악 뚫고 나온 눈동자가 나를 본 것은 겨울을 건너온 그 창끝에 나는 통증도 없이 눈멀었지요 그러나 미안합니다 봄에 갔던 길을 가을에 다시 가고 말았습니다 길의 그림자가, 그때는 잘 보이지 않던 흙 속의 풍경이 보였습니다 무디어진 시간 속에 깊이 처박힌 잎들은 말합니다 나를 밟고 가라, 밟고 가라고 내 눈은 깨어나 무거워진 잎들을 밟고 갑니다. 더이상 무겁지 않은 生, 차라리 다시 눈멀었더라면 하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신비한 현호색은 진 지 오래고 그 괴경(塊莖) 속에 숨기고 있는 毒까지 다 보였습니다 그걸 캐다가 옮겨 심지는 않을 겁니다 미안합니다 무릉계에 가더라도 편지하지 마십시오 그 빛나던 이파리들은 이미 제 것이 아닙니다1966년 충남 논산 출생 연세대학교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등단 1999년 제17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2005년 제17회 이산문학상 수상,((주)문학과지성사가 주관하는 , 시집『사라진 손바닥』) 그 외에 김달진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현대문학상을 수상 「시힘」동인 2004년 현재 조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 시집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사라진 손바닥> 산문집 <반 통의 물> 시론집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등 다수 ------------------------------------------- [감상] 빛나던 사랑의 절정을 지나 와 어느 날 아름답기 그지없었던 옛 시절의 풍경을 추억처럼 다시 거닐었습니다. 꽃피던 봄날에는 온 세상이 무릉계였지요. 꽃이 피고 지고, 농담처럼 세월이 흐르고, 그렇게 마음을 덜어낸 자리에는 사랑에 빠져 있던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흙속의 풍경이며, 실한 알뿌리에 숨기고 있는 독까지 다 보고 말았습니다. 상처를 통하여 배운 소중한 가르침이겠지요 그 괴경(塊莖)을 옮겨 심으면 다시 새로운 사랑의 씨앗이 움트겠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을 겁니다. 새로운 이파리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추억은 그저 추억일 뿐입니다. [양현근] * 塊莖(괴경:덩어리 괴, 줄기 경) : 줄기 덩어리
출처 : 시의 향기로 여는 마당글쓴이 : 김영천 원글보기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