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이 있는 시

[스크랩] 가방, 혹은 여자 / 마경덕

백연심 2008. 1. 28. 14:52

가방, 혹은 여자
마경덕
  그녀는 무엇이든 가방에 넣는 버릇이 있다.  도장 찍힌 이혼
서류, 금간 거울, 부릅뜬 남자의 눈알, 뒤축 닳은 신발.  십 년 
전에 가출한 아들마저 꼬깃꼬깃 가방에 구겨 넣는다. 언젠가
는 시어머니가 가방에서 불쑥 튀어나와 해거름까지 잔소리를 
퍼부었다.  그녀의 취미는 접시 던지기, 지난 봄, 던지기에 열
중한 나머지 벽을 향해 몸을 날린 적도 있었다.  틈만 나면 잔
소리를 향해, 바람난 남자의 뻔뻔한 면상을 향해 신나게 접시
를 날린다. 쨍그랑 와장창!
  그녀의 일과는 깨진 접시 주워 담기. 뻑뻑한 지퍼를 열고 방
금 깨뜨린 접시를 가방에 담는다.  맨손으로 접시조각을 밀어 
넣는 그녀는 허술한 쓰레기봉투를 믿지 않는다.  적금통장도 
자식도 불안하다. 오직 가방만 믿는다. 오만가지 잡다한 생각
으로 터질 듯 빵빵한 가방, 열리지 않는 저 여자.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향동인  
시집 <신발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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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순종과 인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미덕이자 至高至善의
가치로 인식되고 있지요. 남성 중심주의의 사회가 빚어낸 불행하기
그지없는 유산입니다. <그녀>는 남성중심 사회의 희생물입니다. 
한 남자의 아내로서, 자식의 어머니로서, 그리고 며느리로서 <그녀>는 
부단한 자기희생만을 강요당하는 존재입니다. 도피처라고는 자의식의
해방구인 <가방> 밖에 없으나 그 <가방>은 자신을 옭아매는 숙명같은
속박의 굴레이기도 합니다. 깨진 접시로 대변되는 현실을 인식하는 
순간 <그녀>는 주어진 것들이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가방>으로 표현되는 속박 속에서 오히려 마음의 
평화와 편안함을 느끼는 가부장적 사회의 아이러니에 빠지게 됩니다. 
가방 속의 여자, 열리지 않는 그 여자....
무조건적인 순종을 숙명처럼 걸머지고 살아 오신 어머니의 모습과 가슴
아픈 삶의 편린들이 보이는 듯 합니다.  [양현근]
출처 : 시의 향기로 여는 마당
글쓴이 : 김영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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