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이 있는 시
[스크랩] [시와 수필]성체함 등만이 / 김학원
백연심
2008. 1. 28. 14:38
마음의 폐허에서 시는 싹 트는가
나는 어려서부터 성당에 다니면서 인적 드물고 버드나무 그늘진 성당 길 걷기를 무척 좋아 하였다. 여명이 어둠 속에서 불러온 새벽빛이나, 달이 버드나무를 지나갈 무렵 사방 어디나 고요히 비추는 빛 그 경이로운 빛에 꿈꾸듯이 보낸 나날은 어린 나를 다른 세상에 들어 올려다 준 것 같은 감동에 휩싸이곤 하였다. 사실 그랬다. 성당 길을 걸으면서 허다한 감동과 감정이 싹터난 어린 날은, 나는 기이한 빛 속에서 사는 것 같았다.어떤 날은 큰길로 나가 북문 쪽 성터를 바라보거나 영덕산에서 칡을 캘 때면 산길마다 따로 앉은 무덤들이 어린 나에게 주던 오싹한 떨림과 긴 침묵, 거기 고사목 세차게 우는 소리에 놀라기도 하였고 태양이 구름에 가려지거나 산정 바람이 험한 날은 나는 급히 하산하여 도립병원 복도나 창고에 숨어 있다 바람이 잔잔해지고 구름에 가리운 태양이 다시 빛나면 나는 산에 올라 멀리보이는 성당과 서천 물 우는소리 줄선 버드나무 북청역 증기기관차 기적소리 송정을 덮는 소나무 그늘 동천에 피어난 진달래꽃 대박골의 기괴한 울음, 성벽 밑에 들어선 가난한 판잣집들 불빛에서 느꼈던 정감이나 보다 오래전 시간에서 오는 갖가지 사소한 울림조차 나에게 공상의 황홀한 날개를 달아주었다.
아침이 오면 동창에 물든 요란한 빛의 채감과 변화 노곤한 잠 속에서 듣던 행상들 구성진 외침이나 꿀벌 잉잉거리던 東川 사과밭 꽃길하며, 성 밑을 굴러가는 수레바퀴소리 성당의 저녁미사를 알리는 종소리 어린 날 사제관에서 보았던 聖畵에 대한 깊은 충격과 감동 유리잔이 서로 부딪히는 맑은 울림에서 떠오른 기억들, 성서 성당에 시무하시던 신부님과 이주한 독일인의 근면성과 검소한 생활 태도가 어린 날 기억에 깊숙이 뿌리박혀있었다. 그들은 포도와 양배추 젖소를 키우는 틈틈이 성당 일을 돕고 있었다. 이후 전쟁의 참혹한 폐허에 던져지기까지 나는 실존적인 불안이나 전율은 물론 사르트르나 카뮈 융, 쇼펜하우어 예이츠 소월은, 전혀 몰랐으나 이미 의식의 흐름 속에는 유년기의 기억이나 소년기의 나를 시인의 길로 가게끔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소년기로 접어들어 나는 가톨릭에서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어린 나이이고 동네 교인들 권유로 서울 새문안교회를 <초창기엔 신문내 교회라고 불렸음> 다녔다. 그러니까 내 나이 17살일 때 수난절 새벽 내 시의 원천인 구원의 여인을 우연히 아주 우연히 새문안교회에서 만난 것이다. 내게 있어서 이 만남은 아마 필연적인 만남인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하나의 작은 비극이었는지 지금에도 알 수 없는 기구한 만남 이었다 .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난 건 8살과 18살일 때 두 번뿐이나 나는 3년 넘게 그녀와 같은 교회에서 지냈다 대단한 행운이라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베아트리체는 24살에 요절, 단테로선 대단한 충격이자 실의와 방탕에 빠진 생활을 10년 동안 보내다, 신생에서 그녀에 관한 연시로 일관하다, 신곡이란 불후의 대작을 쓰고 난 직후 그는 생을 마감하였다. T. S.엘리엇은 말하기를 근대문학은 단테와 셰익스피어 두 사람이 나누어 가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단테가 신곡이나 신생에서 노래한 연시와 비교한다면 내가 그녀를 향해 노래한 것은 어린아이 장난에 불과하나 그녀에 대한 사랑은 단테와 겨둘 만큼 진정한 것이라 생각한다.
환도 직후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집안이 몰락하고 양친 모두 세상 떠나시자 나는 이때부터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았고 처음에 뜻을 둔 예술과 문학에서 동떨어진 학문이라 별다른 의욕 없는 학문을 하였을 뿐이다. 이후 세상을 등지고 살았기 때문에 그녀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번민을 견딜 수가 없어 오랜 시간을 방황하였다. 조금씩 그 고통과 고뇌가 바람이 풀려난 순간처럼 나를 지나가고 지난날 아픔들이 하나하나 시로 탄생하였다. 그간 많은 시와 글을 썼으나 보는 사람도 없었고 마치 일기 쓰듯이 쓴 글이고 퇴고 없이 모아둔 글이라 오늘에 와서 보면 치졸하기까지 한 것이 많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비탄에 잠긴 날은 홧김에 모아둔 초고를 불태우고 방랑생활을 하다 보니 분실한 작품 또한 많았다. 지금에 와서 곰곰이 생각하면 사랑은 번개 같은 힘이라 단 한순간 가슴을 뚫고 지나간 힘, 그 강렬한 뚫림은 내 전신을 폐허로 만들었고 비애의 강물로 흘러가게 하였을 뿐이다. 때론 그녀와 나를 같은 시간에다 놓아둔 분을 원망하기까지 하였으나 상처뿐인 마음의 폐허에서 그래도 시의 싹은 가지에서 줄기와 꽃을 터트리며 자라고 있었다. 말년에 이른 오늘 그녀는 묘혈에까지 동반할 구원한 연인이며 항상 내가 기도하는 기도의 불꽃이다. 사람은 잃어버린 자기의 반쪽을 찾아 영원한 여행을, 설사 그 여행이 천개의 돌로 막혀있다 한들 나는 돌을 하나하나 들어내며 갈 것이다. 그녀와 함께 한 날은 실로암 정갈한 물로 씻겨져 맑고 고요한 나날이라 나는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주께서 무화과나무 밑에서 니고데모를 부르신 것같이 나도 그녀를 부를 것이다. 젊은 날 뜨거운 정렬 식어지고 죽음을 염두에 둘 나이가 되자 앞 강물로 세심하는 마음으로 살다보니 <성체함등만이> 나를 위로할 수 있다는 글을 쓸 수 있었다.
성체함 등만이
이따금 성당 그늘 성모상 앞에 머문다
빛의 둥지에서 여인이 낳은 사랑은 원죄 없이 머물고
내 눈물과 기도로 석류 속 같이 터져 나온 여인
수난절 새벽이면 더없이 생각난다
지나간 날은 수레바퀴처럼 내게서 굴러갔으나
세월 저쪽 종각 밑에서 그녀는 제비꽃으로 피어났다
성모의 사랑에서 꽃핀 여인이여
내 마음이 당겨질 대로 당겨져 시공을 넘어 쏘아진 화살,
가슴에 꽂혀지고 난 이후 이토록 나는 정지된 시간 속에 있다
루피오의 그림에서 받은 靈感 시의 불꽃을 만들기도 하였고
내 마음이 미쳐 준비도 되기 이전에 그녀의 눈빛은
번개보다 빠른 속도로, 요동할 수 없는 그물로 나를 감아 올려
나는 그 사랑의 덫에서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누렸다
빛살은 지금 정오의 활기로 넘쳐나 하늘엔 구름이 흘러가고
어두운 제단의 성체함 등만이 위로가 되었다
어느 수난절 새벽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어려서부터 성당에 다니면서 인적 드물고 버드나무 그늘진 성당 길 걷기를 무척 좋아 하였다. 여명이 어둠 속에서 불러온 새벽빛이나, 달이 버드나무를 지나갈 무렵 사방 어디나 고요히 비추는 빛 그 경이로운 빛에 꿈꾸듯이 보낸 나날은 어린 나를 다른 세상에 들어 올려다 준 것 같은 감동에 휩싸이곤 하였다. 사실 그랬다. 성당 길을 걸으면서 허다한 감동과 감정이 싹터난 어린 날은, 나는 기이한 빛 속에서 사는 것 같았다.어떤 날은 큰길로 나가 북문 쪽 성터를 바라보거나 영덕산에서 칡을 캘 때면 산길마다 따로 앉은 무덤들이 어린 나에게 주던 오싹한 떨림과 긴 침묵, 거기 고사목 세차게 우는 소리에 놀라기도 하였고 태양이 구름에 가려지거나 산정 바람이 험한 날은 나는 급히 하산하여 도립병원 복도나 창고에 숨어 있다 바람이 잔잔해지고 구름에 가리운 태양이 다시 빛나면 나는 산에 올라 멀리보이는 성당과 서천 물 우는소리 줄선 버드나무 북청역 증기기관차 기적소리 송정을 덮는 소나무 그늘 동천에 피어난 진달래꽃 대박골의 기괴한 울음, 성벽 밑에 들어선 가난한 판잣집들 불빛에서 느꼈던 정감이나 보다 오래전 시간에서 오는 갖가지 사소한 울림조차 나에게 공상의 황홀한 날개를 달아주었다.
아침이 오면 동창에 물든 요란한 빛의 채감과 변화 노곤한 잠 속에서 듣던 행상들 구성진 외침이나 꿀벌 잉잉거리던 東川 사과밭 꽃길하며, 성 밑을 굴러가는 수레바퀴소리 성당의 저녁미사를 알리는 종소리 어린 날 사제관에서 보았던 聖畵에 대한 깊은 충격과 감동 유리잔이 서로 부딪히는 맑은 울림에서 떠오른 기억들, 성서 성당에 시무하시던 신부님과 이주한 독일인의 근면성과 검소한 생활 태도가 어린 날 기억에 깊숙이 뿌리박혀있었다. 그들은 포도와 양배추 젖소를 키우는 틈틈이 성당 일을 돕고 있었다. 이후 전쟁의 참혹한 폐허에 던져지기까지 나는 실존적인 불안이나 전율은 물론 사르트르나 카뮈 융, 쇼펜하우어 예이츠 소월은, 전혀 몰랐으나 이미 의식의 흐름 속에는 유년기의 기억이나 소년기의 나를 시인의 길로 가게끔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소년기로 접어들어 나는 가톨릭에서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어린 나이이고 동네 교인들 권유로 서울 새문안교회를 <초창기엔 신문내 교회라고 불렸음> 다녔다. 그러니까 내 나이 17살일 때 수난절 새벽 내 시의 원천인 구원의 여인을 우연히 아주 우연히 새문안교회에서 만난 것이다. 내게 있어서 이 만남은 아마 필연적인 만남인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하나의 작은 비극이었는지 지금에도 알 수 없는 기구한 만남 이었다 .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난 건 8살과 18살일 때 두 번뿐이나 나는 3년 넘게 그녀와 같은 교회에서 지냈다 대단한 행운이라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베아트리체는 24살에 요절, 단테로선 대단한 충격이자 실의와 방탕에 빠진 생활을 10년 동안 보내다, 신생에서 그녀에 관한 연시로 일관하다, 신곡이란 불후의 대작을 쓰고 난 직후 그는 생을 마감하였다. T. S.엘리엇은 말하기를 근대문학은 단테와 셰익스피어 두 사람이 나누어 가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단테가 신곡이나 신생에서 노래한 연시와 비교한다면 내가 그녀를 향해 노래한 것은 어린아이 장난에 불과하나 그녀에 대한 사랑은 단테와 겨둘 만큼 진정한 것이라 생각한다.
환도 직후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집안이 몰락하고 양친 모두 세상 떠나시자 나는 이때부터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았고 처음에 뜻을 둔 예술과 문학에서 동떨어진 학문이라 별다른 의욕 없는 학문을 하였을 뿐이다. 이후 세상을 등지고 살았기 때문에 그녀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번민을 견딜 수가 없어 오랜 시간을 방황하였다. 조금씩 그 고통과 고뇌가 바람이 풀려난 순간처럼 나를 지나가고 지난날 아픔들이 하나하나 시로 탄생하였다. 그간 많은 시와 글을 썼으나 보는 사람도 없었고 마치 일기 쓰듯이 쓴 글이고 퇴고 없이 모아둔 글이라 오늘에 와서 보면 치졸하기까지 한 것이 많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비탄에 잠긴 날은 홧김에 모아둔 초고를 불태우고 방랑생활을 하다 보니 분실한 작품 또한 많았다. 지금에 와서 곰곰이 생각하면 사랑은 번개 같은 힘이라 단 한순간 가슴을 뚫고 지나간 힘, 그 강렬한 뚫림은 내 전신을 폐허로 만들었고 비애의 강물로 흘러가게 하였을 뿐이다. 때론 그녀와 나를 같은 시간에다 놓아둔 분을 원망하기까지 하였으나 상처뿐인 마음의 폐허에서 그래도 시의 싹은 가지에서 줄기와 꽃을 터트리며 자라고 있었다. 말년에 이른 오늘 그녀는 묘혈에까지 동반할 구원한 연인이며 항상 내가 기도하는 기도의 불꽃이다. 사람은 잃어버린 자기의 반쪽을 찾아 영원한 여행을, 설사 그 여행이 천개의 돌로 막혀있다 한들 나는 돌을 하나하나 들어내며 갈 것이다. 그녀와 함께 한 날은 실로암 정갈한 물로 씻겨져 맑고 고요한 나날이라 나는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주께서 무화과나무 밑에서 니고데모를 부르신 것같이 나도 그녀를 부를 것이다. 젊은 날 뜨거운 정렬 식어지고 죽음을 염두에 둘 나이가 되자 앞 강물로 세심하는 마음으로 살다보니 <성체함등만이> 나를 위로할 수 있다는 글을 쓸 수 있었다.
성체함 등만이
이따금 성당 그늘 성모상 앞에 머문다
빛의 둥지에서 여인이 낳은 사랑은 원죄 없이 머물고
내 눈물과 기도로 석류 속 같이 터져 나온 여인
수난절 새벽이면 더없이 생각난다
지나간 날은 수레바퀴처럼 내게서 굴러갔으나
세월 저쪽 종각 밑에서 그녀는 제비꽃으로 피어났다
성모의 사랑에서 꽃핀 여인이여
내 마음이 당겨질 대로 당겨져 시공을 넘어 쏘아진 화살,
가슴에 꽂혀지고 난 이후 이토록 나는 정지된 시간 속에 있다
루피오의 그림에서 받은 靈感 시의 불꽃을 만들기도 하였고
내 마음이 미쳐 준비도 되기 이전에 그녀의 눈빛은
번개보다 빠른 속도로, 요동할 수 없는 그물로 나를 감아 올려
나는 그 사랑의 덫에서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누렸다
빛살은 지금 정오의 활기로 넘쳐나 하늘엔 구름이 흘러가고
어두운 제단의 성체함 등만이 위로가 되었다
어느 수난절 새벽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출처 : 시의 향기로 여는 마당
글쓴이 : 김영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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