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이 있는 시

[스크랩] 아우라지 / 김혜경

백연심 2008. 1. 28. 14:33
아우라지 / 김혜경 (1961~ )


아우라지 오십천은 너무 애돌아
아라리 사람들 발걸음이 느리다
옥수수를 이고 가는 여인의 그림자를
노란 택시가 먼저 채어가도
저 여울목에서가 아니면 뒤돌아보지 않는다
아라리 마을엔 물이 먼저 마을 어귀로 달려가
사람들 머리에 얹는 무게를 내려놓는다
가만가만 숨을 고르는 것도 언제나
느타나무 둥치에서 잠시 쉬다가는
저 한가한 강물이 먼저다
멀리 산을 닮고 싶은 것도 게으름이어서
내 두통 언저리를 내내 출렁이다가
하체를 적시며 올라오는 물안개에
몸을 슬쩍 섞은 산은 어디로 가고
아라리 마을엔 이내 물소리만 남았다

[해설]
애돌아 가기만 하는 아우라지 오십천을 닮아 발걸음마저
느린 아라리 사람들의 천성은 문명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
한 결과가 아니다. 여울목이 아니면 뒤돌아보지 않는 태
도는 자본주의적 시간 관리나 다그침에 마냥 끌려가지 않
겠다는 결심의 투사다. 사람보다 강물이 먼저인 그 게으
른 자연우위의 세계는 효율과 실질을 중시하는 실용주의
의 떠밀려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살아
있는 곳이며, 옭죄며 존재론적 안전감을 위협하는 것으로
부터 '나'를 격리시키고자 하는 적극적 의지가 개입되어
있는 공간이다. - 시인 임동확

-광주일보 제17208호-
출처 : 시의 향기로 여는 마당
글쓴이 : 김영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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