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천년의 스캔들’ 헨리 8세와 그의 여인들
백연심
2007. 8. 22. 15:09
2007년 8월 17일 (금) 23:27 세계일보
‘천년의 스캔들’ 헨리 8세와 그의 여인들
|
■헨리 8세와 여인들 1,2/엘리슨 쉬어 지음/ 박미영 올김/루비박스/1만4900원
여섯 번이나 결혼했으며, 그 중 두 명이나 단두대로 보낸 비정한 남편. 앤 불린과의 결혼을 위해 영국의 국교를 바꿔버린 사랑에 약한 남자. 훗날 잉글랜드의 여왕이 된 ‘피의 메리’(Bloody Mary)와 엘리자베스 1세의 아버지. 가톨릭을 탄압하고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화형한 공포의 전제 군주. 이쯤 되면 그가 누구인지 눈치 챘을 것이다. 바로 튜더 왕조를 대표하는 헨리 8세(1491~1587) 영국 왕이다.
헨리 8세 이야기는 이미 영미권의 소설과 영화를 통하여 수없이 반복되었다. 특히 영국의 국교가 가톨릭에서 성공회로 바뀌게 된 헨리 8세와 앤 불린의 사랑 이야기는 미국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지난 천년간 최고의 스캔들’로 꼽혔을 정도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미국 드라마 ‘튜더스’가 국내 케이블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며 헨리 8세의 거침없는 연애와 중상모략이 난무하는 영국 궁정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국내 처음으로 번역 소개되는 ‘헨리 8세와 여인들’은 헨리 8세와 그의 여섯 왕비를 중심으로 한 역사서다. 저자 앨리슨 위어는 집필을 위해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직접 수집한 사료들을 객관적 시각으로 서술하였다. 완고하고 헌신적인 가톨릭 신도 아라곤의 카탈리나, 자존심 강하고 야망이 큰 ‘천일의 앤’ 앤 불린, 유일하게 아들을 낳았던 외유내강의 여인 제인 시모어, 왕에게 버림받았지만 실속은 챙긴 클레브스의 안네, 무분별한 사생활로 죽음에 내몰린 캐서린 하워드, 헨리 8세의 마지막을 지켰던 캐서린 파의 이야기가 차곡차곡 담겨있다.
편지기록, 외교문서, 연대기 등의 연구를 통한 1차 자료의 철저한 고증은 여섯 왕비들에 얽힌 에피소드에 신빙성과 사실감을 부여한다. 이 책은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연애소설을 읽듯 편안하게 읽히는데, 이는 ‘대중적인 역사’쓰기를 지향하는 저자의 역사관 덕택이다. 유려한 문체, 흥미진진한 사건 구성, 인물에 대한 입체적 분석은 앨리슨 위어의 역사서를 연대기 순으로 진행되는 기존의 평면적인 역사책과 구별 짓는 주요한 특징이다.
오늘날의 진보적 여성들과 ‘깬 남성들’ 눈에는 헨리 8세의 아내들이 엄격한 구속에 얽매인 사람들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남자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세뇌 받으며 자라난 튜더왕조 여성들에게 구속은 당연한 것이었다. 왕비조차 여염집 여인들처럼 남편 뜻에 무조건 복종해야만 했다. 헨리 8세의 아내 중 제인 시모어는 ‘복종하고 섬기기’를, 캐서린 하워드는 ‘남편 뜻이 가장 먼저다’를 삶의 모토로 삶았다. 앤 불린과 캐서린 파는 지적 수준이 높고 왕과의 관계가 불평등하다는 사실을 자각했기 때문에 걸핏하면 왕과 충돌했다.
앨리슨 위어는 여섯 왕비를 서술하면서 그들을 착한 왕비, 나쁜 왕비와 같은 이분법으로 단순히 분류하지 않았다. 먼저 저자는 왕비를 비롯한 튜더 왕조의 여성들이 왜 정략결혼에 순순히 응할 수밖에 없었는지, 여성이 왜 열등한 존재로 여겨졌는지, 여성이 지켜야할 덕목이 무엇인지에 대해 당대의 시각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다각적 분석과 사료의 토대 위에서 왕비들의 다층적 면모를 끄집어낸다.
헨리 8세에게 아들을 선사하고 생을 마감한 제인 시모어는 현모양처의 모습으로 왕을 사로잡았다. 제인은 흔히 성녀나 이상적인 왕비의 이미지로 알려져 있지만 저자는 그녀가 왕비를 목표로 철저한 계산 하에 헨리 8세에게 접근했다고 본다.
야심가인 오빠 에드워드가 그녀를 부추긴 것은 사실이지만 왕의 부인이라는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노력은 그녀의 욕망에 기인한 것이었다. 헨리 8세는 후계자를 생산하고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는 고분고분한 부인을 원했는데, 그의 여인들은 때로는 앤 불린처럼 격정적으로 다투면서, 때로는 제인처럼 부드럽지만 실리를 챙기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채워나갔다. 왕비들은 정략결혼의 희생양이나 사랑에 속고 우는 순진한 사랑지상주의자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헨리 8세의 첫 번째 부인은 형의 미망인인 ‘아라곤의 카탈리나’였다. 선왕 헨리 7세는 프랑스와 신성 로마제국를 견제하기 위해 에스파냐의 공주 카탈리나를 큰아들 아서와 결혼시켰다. 그는 아서가 급사한 후 에스파냐와의 왕 페르디난드와 결혼 지참금 문제로 4년여에 걸친 협상 끝에 그녀와 아서의 동생, 헨리 8세의 결혼을 승낙한다.
왕실 자제들이 사랑이 아닌 국가의 이익을 위해 타국의 공주나 왕자와 결혼하는 것은 그 당시 당연한 관습이었다. 중매로 맺어진 결혼에서 아내는 남편이 충실하기를 기대할 수 없었다. 결혼은 거래일 뿐, 사랑 혹은 쾌락과는 별개였다. 왕족과 귀족들은 더 나은 부와 권력, 또는 후계자를 얻기 위해 배우자와의 이혼을 감행하기도 했다.
<img src="http://www.segye.com/photo/2007/8/17/22222.jpg" align=right>
앤 불린, 제인 시모어 이후 헨리 8세의 4번째 왕비가 된 ‘클레브스의 안네’. 독일의 공주였던 안네는 클레브스 지방을 영지로 하는 윌리엄 공의 누이였지만 집안은 매우 가난하였다. 헨리 8세는 북부 독일 지방의 지지를 얻기 위해, 또한 윌리엄 공이 프랑스 왕과 절친하다는 이유로 그녀와의 결혼을 결심한다.
그러나 추한 암말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못 생긴 안네의 얼굴을 본 왕은 한 번도 그녀와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 결국 안네와의 결혼은 무효화되었고 안네는 현명하게도 왕과 남매관계를 맺어 정당하고 안전하게 부와 권력을 누렸다.
영국 국교를 가톨릭에서 성공회로 바꾼 이후 헨리 8세의 집권기는 물론 그의 딸들인 메리와 엘리자베스가 통치하던 시기까지, 구교와 신교는 서로 번갈아가며 권력을 쥐고 반대파 종교인들에게 무자비한 탄압을 가했다.
왕과 더불어 절대 권력을 구가하던 추기경 울시는 정부와의 사이에서 두 명의 자식을 둔 지극히 세속적인 사제였다. 또한 하느님을 섬긴다는 가톨릭 본래의 명분을 잊고 극소수의, 특히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사제의 신분을 남용했다. 그는 헨리 8세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지만 신교를 옹호했던 앤 불린과의 세 겨루기에서 패한 후 비참한 말년을 보내야 했다.
당대 유럽 최고의 지성으로 손꼽히던 토마스 모어 역시 종교와 권력의 틈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모어는 헨리 8세의 두터운 신임을 업고 대법관에 취임했지만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가 왕의 이혼을 완강하게 반대하자 왕은 결국 그를 져버렸다. 모어는 반역죄로 몰려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신교도의 편에 섰던 토마스 크롬웰은 앤 불린을 간통죄로 몰아 처형할 때 앞장섰다. 교황청과 연계된 수도원을 해산하고 국왕을 영국 교회의 ‘유일 최고의 수장(首長)’으로 규정한 ‘수장령’을 선포하는 등, 그는 로마 교황청과의 관계를 끊고 왕권을 강화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여인을 향한 사랑이 이내 시들어버리듯 신하를 향한 국왕의 신뢰도 오래가지 못했다. 크롬웰이 추천한 ‘클레브스의 안네’와 헨리 8세의 혼인이 6개월 만에 무효화되면서 두 사람 사이는 벌어지게 된다. 여기에 정적의 이간질이 더해져 크롬웰은 자신이 내몰았던 앤 불린과 마찬가지로 몰락하게 된다.
신교와 구교의 갈등은 헨리 8세 이후 가톨릭으로 국교를 바꾼 메리 여왕, 다시 성공회로 국교를 바꾼 엘리자베스 1세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고 종교와 권력이 결탁한 지루한 싸움은 무수한 생명만을 희생한 채 일단락되었다.
영국 역사계의 시오노 나나미로 평가받는 저자 앨리슨 위어(Alison Weir)는 영국 출신의 역사가이자 작가, 소설가이다. 헨리 8세의 첫 번째 부인인 ‘아라곤의 카탈리나’에 대한 소설을 읽고 역사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한 위어는 이미 15살 때부터 역사책을 읽고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대학(North Western Polytechnic)에서 역사교육학을 전공했지만 선생님이 아닌 작가의 길을 선택한 그녀는 1989년부터 영국 튜더왕조를 중심으로 한 저서를 발표해 왔다.
“역사는 모든 이들의 것”이라는 소신을 지닌 위어는 철저한 연구와 고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역사를 소설과 같은 유려한 문장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풀어내는 ‘대중적인 역사’쓰기를 지향한다. 영미권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팬덤(fandom)이 형성되어 있는 유명 작가로, 매년 수 십 차례의 강연이 계획되어 있다. 이러한 대중적 인기 외에도 많은 사학자들이 그녀의 저서를 인용하고 있으며, 그녀의 저서들은 역사 교과서로, 교양서로 애독되고 있다.
옮긴이 박미영씨는 고려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방송 작가로 일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매들린 올브라이트-마담 세크러터리’ ‘줄리아니의 리더십’ ‘캘빈 클라인’ ‘섹스&시티’ ‘오만과 편견, 그 후의 이야기’ 등이 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 제17대 대선 특별 사이트 http://17daesun.segye.com
`빠르고 통쾌한 세상이야기-펀치뉴스`
ⓒ 세계일보&세계닷컴(www.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